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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궁동 #초원가든 #금암산 #자연 #풍경 #관계 #모임 #은행나무 #기록 #후손

하남시 춘궁동 주민 송태섭, 송형숙님과의 인터뷰,

2022년 8월 23일

 

…그리고 금암산, 

우리 땅은 금암산을 옆에 끼고 있었는데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그 산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계절마다 산의 모습이 바뀌었는데, 

우리 손주가 어릴 때 그 산을 보면서 

“할머니, 이곳은 너무 아름다운 곳이에요. 

밤에는 산이 까만데, 낮에는 초록색이에요.”라고 했던 말이 기억나네요. 

그 산이 서울에서 비친 불빛 때문에 밤이면 산의 능선이 부드럽게 

마치 아름다운 여자가 누워있는 모습처럼 보였는데 

그게 너무 아름다웠거든요. 

 

Q.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송태섭 저는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살다 보니 그야말로 정반대인 하남시 춘궁동에서 사업을 하게 됐습니다.

Q. 춘궁동에서는 무슨 일을 하셨나요?

송태섭 외식업을 했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건축을 하다가 방이동에 집을 마련하고 정착한 후에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사업지를 선택하다 보니 춘궁동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송파구에서 10~20킬로 전방에서부터 쭉 검토하다가 춘궁동이 집에서 가깝고 또 그곳에서 너무 좋은 느낌을 받아서 여기 이 정도면 출퇴근하면서 자식들을 교육하고 내가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겠다고 판단 내려 춘궁동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지인을 통해서 땅을 구입하게 되었는데, 땅을 알아보고 구입하는 기간만 해도 1년이 넘게 걸렸고요. 그렇게 해서 1994년 4월에 매입하고 제가 운영하던 건설회사에서 94년도에 건물을 건축하여 96년 3월 26일에 초원가든을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송형숙 처음에 땅을 알아볼 때 춘궁동에 가보니 낯설기도 했지만 모든 것이 새롭고 좋았어요. 또 거기 오래 사신 원주민분들을 뵐 수 있었는데 다들 순수하고 좋은 분들이셨어요. 그래서 96년 3월에 춘궁동에서 음식점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그렇게 30여 년을 그곳에서 지내면서 좋은 것들을 많이 보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이제 그곳이 없어진다는 것이 지금 너무 아쉬워요.

Q. 춘궁동에 대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려요.

송태섭 지금에 와서 교산지구라고 그러는데 옛날에는 그야말로 비포장도로에 깡촌이었어요. 저희가 처음 건물을 지어 오픈했을 때 제일 먼저 지역의 원주민분들을 초대했습니다. 한 40여 분이 오셨는데. 대부분이 연세 드신 노인분들이 오셨어요. 그 어르신들께 이야기를 들으니 이 산골짜기가 옛날에는 무서운 동네였다고 하더라고요. 춘궁동은 하남에서도 서울로 출입하는 주요한 골목이었다고 해요. 그분들이 제게 “무엇을 하려고 이곳에 건물을 짓는 거냐?” 물으시곤 했어요. 당시에는 그곳에 음식점도 거의 없었고, 거의 자연만 있었거든요. 저희가 오픈했을 때 오시면서 초대해줘서 고맙다고도 하셨어요. 그러면서 평생 그 동네에 사신 분들이신데도 “이곳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인 줄 몰랐다.”고 하시더라고요. 많은 분이 춘궁동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시곤 했습니다. 6·25 전쟁 때의 이야기, 이성산성의 역사, 또 이곳은 과거 등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주 옛날 조선시대에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갈 때 춘궁동 이성산성 고개를 넘어가야 했다는 이야기, 그런데 춘궁동 고개가 텃세가 심해서 넘어가기 힘들었다는 이야기 등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춘궁동은 교산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길이었습니다. 

Q. 교산 일대에서 꼭 기록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송형숙
고골 사거리로 올라가면 은행나무 집이라고 있는데요 그곳에 600년 역사의 은행나무가 있고 그 나무를 지금 시(市)에서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 마을 모두가 옛날에는 벼 심고 콩 심는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다 창고가 들어서 있어요. 그런데 이제 수용이 되는 바람에 모든 게 바뀌는 것이겠죠. 이제 시대가 바뀌어 버리는 거죠. 그리고 또… 그곳에 남한산성을 올라가는 아주 좋은 코스도 있어요.

Q. 하남에서 몇 년을 계셨던 건가요?

송태섭 1994년에 땅을 구입했고 96년에 사업을 시작했으니, 그러니까 30년에서 좀 빠져서 28년인 것 같네요.

Q. 지역의 장점을 말씀 부탁드려요.

송태섭 아까 말씀드렸듯, 저희는 하남에서 사업을 시작하기 전 송파구에서 건설업을 했어요. 송파구에서 가장 근접한 곳을 보다 보니 이곳을 정하게 됐습니다. 그때 당시에도 송파에서 하남 춘궁동은 차로 10분 내지 20분 대의 거리였어요. 저희 자녀들은 송파에서 학교에 다니고 저희는 10~20분 거리에서 사업 운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선택은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 입지적으로 하남이 서울과 굉장히 가까웠다고 말씀하고 계신 거군요. 하남이 입지적으로 좋은 곳이라는 걸, 30년 전에도 아셨다는 거네요.

송태섭 제가 사업지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했던 것이 그거였습니다. 서울과의 근접성, 입지였죠.

Q. 바로 그러한 서울과의 근접성이 장점이었는데, 그 장점으로 인해 그린벨트에서 신도시로 바뀌게 되는 것 같아요. 

송형숙 일단은 서울에 근접하고, 또 강남에서 가까운 것이 장점이죠.

그리고 서울에서 가까운 것뿐만 아니라, 하남은 자연환경이 너무 좋았어요. 겨울에 춘궁동으로 갈 때 서울에서 출발할 때는 눈이 오지 않았는데, 춘궁동 고개를 넘으면 눈이 오고 있었어요. 그리고 서울에서 출발할 때는 분명 비가 왔는데 또 춘궁동 고개를 넘으면 눈으로 바뀌어 있다던가… 서울에서 5분, 10분만 더 가도 전혀 다른 자연환경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신기했고 정말 아름다웠어요. 송파에서 출발해 춘궁동 이성산성 고개만 넘으면 하얀 산으로 바뀌는 걸 보고 “여기가 바로 스위스네”라고 생각하곤 했으니까요. 음악을 들으며 운전하고 가다 그 순간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져서 그런 생각까지 들었죠. 

그리고 금암산, 우리 땅은 금암산을 옆에 끼고 있었는데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그 산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계절마다 산의 모습이 바뀌었는데, 우리 손주가 어릴 때 그 산을 보면서 “할머니, 이곳은 너무 아름다운 곳이에요. 밤에는 산이 까만데, 낮에는 초록색이에요.”라고 했던 말이 기억나네요. 그 산이 서울에서 비친 불빛 때문에 밤이면 산의 능선이 부드럽게 마치 아름다운 여자가 누워있는 모습처럼 보였는데 그게 너무 아름다웠거든요. 

Q. 이주 시 가지고 가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송형숙 아름다운 풍경이요. 그 아름다운 풍경을 가져다 놓고 싶어요.

송태섭 이곳에 지내면서 알게 된 많은 원주민과 지인들이 생겼어요. 아무래도 이렇게 같이 30여 년을 지내다가 헤어지는 과정이 아쉽습니다. 저는 하남 라이온스 클럽도 하고 있어요. 라이온스 역시 지금은 제 자식뻘의 회원들이 많이 들어오게 되어 같이 어울리고 있는데, 모든 후배가 나를 좋아해요. 세월의 변천에 따라 변한다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매우 아쉽습니다. 

Q. 교산에서 만들어진 관계를 지속하고 싶다는 말씀이신 거죠. 하남에서 라이온스 클럽 활동을 얼마나 하셨나요?

송태섭 하남 신장 라이온스가 지금 48주년인가 되는데요. 제가 34대 회장이었고 지금은 거의 원주민들의 후손에 의해서 하남 라이온스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신도시, 그러니까 미사지구 같은 곳에는 이런 친구들, 원주민 후손들이 별로 없어요. 근처의 라이온스가 광주, 성남, 오포 등 약 16개의 클럽이 있는데, 하남 신장 라이온스는 그야말로 역사가 있는 클럽이에요. 하남은 원주민의 후손들이 이어오는 역사가 있는 곳입니다.

Q. 토지 보상 절차에 대해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송태섭 어쨌든 국가에서 필요해서 땅을 수용하게 됐는데. 이 나이 드신 원주민들이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되고, 이산가족이 되어야 하고… 제가 아는 지인들만 해도 그들이 젊었을 때는 평생 자자손손 여기서 살아왔고 그렇게 계속 살 것이라 생각했는데, 인제 와서 나이를 먹고 떠나야 하니 어디로 가야 할지… 온 주민들이 이제 그렇게 아쉬워하는 거죠. 

저 역시 그런 여파에 의해서 이 지역을 떠나고, 또 원주민과 헤어지고요. 역사가 있는 이 지역에서 이주하게 되는 과정을 생각하면, 너무 아쉬워요. 제가 서부농협 조합원인데요. 사실 오늘도 서부농협 조합원과 같이 대화하게 됐는데, “농지원부” 이런 걸 다 상실하게 돼서 안타깝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어요. 

Q. 당신에게 교산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송형숙 하남 교산, 제가 한 세대를 보냈던 곳이니까, 저는 그곳을 항상 사랑하고 좋아할 것 같아요. 그리고 교산에 아파트가 들어오게 되면, 제게 기회가 온다면 그쪽에 들어가서 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송태섭 아, 사실 우리에게 교산이라는 말은 좀 어색한 거예요. 교산지구는 춘궁동이 더 많이 포함되어 있으니까 춘궁동이라고 해야 하는데… 그리고 지금은 하남시로 승격이 됐지만, 원래는 광주군이었죠. 그런데 어쨌든 교산 신도시로 지명되면서 우리의 역사나 자연이 변치 않고 발전했으면 했는데 어쩔 수 없으니… 아쉬운 마음입니다. 

Q. 미래의 교산 신도시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요?

송태섭 저는 하남의 역사와 문화 등 앞으로의 교산 신도시에서 살게 될 후손에게 이어질 것을 많이 남겨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송형숙 그곳이 옛날에는 아주 시골에 있는 골짜기 마을이었는데요. 이제 신도시가 생기면 그 옛 모습을 우리 후손들이 잘 볼 수 있게끔 기록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뒤에 남한산성을 끼고 있는 산과 자연은 보존되겠지만, 그때 사람들이 살았던 마을과 동네가 옛날에는 이랬노라고 알 수 있는 기록을 꼭 남겨놓으면 좋겠습니다. 

Q. 그러니까 과거의 모습을 간직하며 기록하는 신도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군요. 마지막 질문을 드려요.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송태섭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연이 끊기지 않고 잘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우리 모임들이 많이 있어요. 앞으로도 하남과의 인연을 놓지 않고 지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또 우리 자식들도 앞으로 하남에 근거를 두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