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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시 춘궁동 궁안마을회관에서 원주민
김일례, 김연분, 김은수, 문옥자, 방연희, 정경애, 홍경순님과 인터뷰,
2022년 8월 25일
제사가 동네마다 있는데,
우리 궁안마을은 산신제인데,
법동 알아? 법동은 큰 나무 앞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거기는 목신제라고 해.
다른 동네는 제사를 한 군데서만 지내는데,
우리 동네는 세 군데에서 지내. 옛날에 서낭당이라고 알지? 그래서 서낭제,
그리고 터줏대감이라고 알아?
서낭제는 떡을 가져다 놓고 돌 앞에서 지내. 산신제는 여기 바로 아래에 있는 나무 앞에서 지내. 여기는 도당대라고 해.
옛날부터 그렇게 불렀는데 우리는 그 뜻을 몰라. 제사 지내는 나무를 여기서는 도당 할아버지, 도당 할머니라고 하면서 제사를 지내는 거야.
Q. 2019년에 뵙고 3년 만이에요. 이렇게 다시 뵙게 돼서 반가워요. 다들 여기 춘궁동 궁안마을에 사시는 거죠?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김연분 여기 다 한 동네 사람들이니까, 궁안마을 한동네 사람들이에요. 내가 알려줄게. 여기 아버님은 김은수, 이쪽은 김일례, 홍경순, 문옥자, 방연희, 김연분, 정경애. 이렇게 돼요.
Q. 궁안마을에서는 언제부터 사셨나요?
김연분 우리가 여기 태어난 사람들이고, 여기 있는 몇몇은 시집온 사람들이니까….
Q. 언제 시집오셨나요?
김일례 나는 스물아홉 살에 시집왔어요.
Q. 혹시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김일례 나는 여든 살이 넘었지.
Q. 춘궁동과 궁안마을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김은수 여기 들어올 때 마을회관 앞에 걸린 현수막 봤지? “하남의 숨겨진 진미 연푸국 체험단.” 그거? 저거 왜 걸렸는지 알아?
Q. 하남의 전통 음식을 시연하는 건가요?
김은수 “연푸국”이라는 게, 국인데. 연푸국을 만드는 데가 여기 하남 궁안마을 밖에는 없어. 그래서 하남시에서 그 전통을 계승하려고 그런 행사를 만드는 거야. 언젠가 시에서 나와서 연푸국을 먹어보니까 맛도 좋고, 전통도 있고. 얼마나 좋아?
Q. 연푸국에는 어떤 재료가 들어가나요?
김은수 그때그때 다른데, 고기랑 두부가 주로 들어가고 북어도 들어가고. 그때그때 달라.
방연희 음력 10월 1월에 끓이니까 와요.
김은수 우리 궁안마을에는 연푸국이라는 전통이 있어요. 음력 10월 1일에 “산신제”라고 동네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그때 만드는 음식이 연푸국이야. 전통을 이어받아서 지금까지도 하고 있는 거야.
김은수 하남에 제사가 동네마다 있는데, 제사 이름이 다 달라. 우리 궁안마을은 “산신제”인데, 법동 알아? 법동은 큰나무 앞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거기는 “목신제”라고 해. 다른 동네는 제사를 한 군데서만 지내는데, 우리 동네는 세 군데에서 지내.
Q. 여기 궁안마을이 다른 동네보다 사람이 더 많이 살아서 그런 건가요?
김은수 모르지. 옛날부터 어르신들이 하신 걸 우리가 계속 따라하는 거지. 제사는 내가 지내.
Q. 아버님께서 당주(堂主)셨군요. 산신제 외에 다른 제사는 또 무엇이 있나요?
김은수 옛날에 서낭당이라고 알지? 그래서 서낭제, 그리고 터줏대감이라고 알아? 서낭제는 떡을 가져다 놓고 돌 앞에서 지내. 산신제는 여기 건물 바로 아래에 있는 나무 앞에서 지내. 여기는 도당대라고 해. 옛날부터 그렇게 불렀는데 우리는 그 뜻을 몰라. 제사 지내는 나무를 여기서는 도당 할아버지, 도당 할머니라고 하면서 제사를 지내는 거야. 한양대학교에서 와서 다 조사해가서 기록하고 책으로 만들어뒀어.
Q. 전통 의례에 대한 기록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여기 계신 다른 분들께 동네에 관해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방연희 여기서 원래 동네에서 태어난 사람들 말고, 여기로 시집온 사람들에게 물어봐야지. 여기 둘이 시집온 사람들이야. 여기로 시집와서 좋은 거 얘기해봐.
Q. 시집오신 때가 약 50년 정도 되셨을 텐데, 처음에 이곳에 오셨을 때 어떠셨나요?
김일례 일만 많이 했어요. 농사만 많이 지었어요. 삽으로 파서, 내 돈이 없으니까 조금이니까 남의 땅을 빌려서 삽으로 다 뒤집어. 그렇게 농사를 지어서 먹고살았지.
김은수 당시에 어렵게 사는 사람들은 있는 사람들에게 쌀을 빌려서 먹고 그다음 가을에 세 배로 이자로 내고 했어. 옛날에는 다 그렇게 먹고 살았어.
Q. 그 시절에는 무슨 농사를 지으셨나요?
홍경순 참외, 수박, 그다음에 토마토, 그다음에 오이. 이렇게 농사지었지.
김연분 옛날에 고골이 다 농촌이야. 다 농사만 지은 거야.
우리 오빠가 농사지은 걸로 이렇게 둥치를 만들어서 천호동까지 걸어가서 팔았어.
Q. 천호동에 시장이 있었던 거죠?
김연분 응. 그렇지.
방연희 나물 장사도 많이 했지.
Q. 농사지으신 것을 시장에 가져다 파신 건 언제까지 하신 건가요?
김은수
6·25 날 때까지 그렇게 살았지. 6·25 날 때 내가 열두 살이었어. 전쟁 후에 조금 나아진 거지. 여기는 순수하게 농촌이었어.
Q. 지금도 농사를 계속 지으시나요?
김연분 지금은 야채 조금 심어서 우리 먹을 정도로만 하지. 세월이 좋아지고 먹고사는 게 좀 나아졌으니까. 고생 끝이야. 이제는 고생 안 해.
Q. 지역과 관련해서 꼭 기록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방연희 남기고 싶은 거는 이제 없어요. 이제 내가 얘기를 할게. 우리는 여기서 태어난 사람들이 많아요. 나는 여기서 해방되던 해에 태어났어. 여기서 태어나 살다가 여기로 시집와서 여기서 사는데, 우리 동네는 옛날 여기에 궁이 있었어요. 그래서 궁안이라고 했거든. 궁터가 있었어요. 그때 기와집들 헌 걸 가지고 지은 집들이 아직 많이 있어요. 경옥이네도 그렇고, 여기 이 할머니네, 이 아주머니네, 점례네도 그렇고. 그걸로 지은 건 줄로 나는 알고 있어.
저는 어려서 몰랐는데, 그때는 밭에 뭘 심어도 곡식들이 지금처럼 잘 되나요? 퇴비라야 뭐 인분 가져다 놓고 그렇게 농사지었죠. 잘 살지를 못했어요. 살기가 엄청 어려웠어요. 돈 한 푼 제대로 못 쓰고 농촌에서 살던 사람들이에요.
김연분 그렇게 없이 살다가 이제 잘살게 되니까….
방연희 그렇게 어떻게 어떻게 살다가 이제 하남시장으로 손영채 시장이 되면서 우리가 여기에 창고를 지을 수 있게 됐어. 허가가 나고 창고를 짓고. 그래서 창고 지은 후로 돈이 나오니까 어느 정도 형편이 풀려서 살기 많이 좋아졌어요. 우리 궁안마을뿐 아니라 하남의 다른 동네도 그렇고.
그전에는 쌀 많은 사람은 쌀 팔아서 돈 벌고 옛날에는 나물 해다가 나물 팔고. 나는 나물 장사는 안 했어. 그런데 우리 할머니는 나물 장사를 하셨대. 그렇게 어른들이 일하고, 우리도 집에서 그렇게 일을 많이 했어. 그러니까 사는 거 진짜 고생 많았지.
그래서 진짜 살기 좋아졌어. 이제 살아가는 게 좋아졌어. 옛날에는 농사짓는 것도 뭐 농기구가 잘 나오길 하나? 농사도 맨날 지게 지고 다니고, 무를 뽑아서 옮겨도 지금처럼 차로 실어 올 수도 없어서 지게 지고 그랬는데… 우리가 지금 뭐가 불만이냐 하면, 생전 끝끝내 여기서 살 줄 알았는데 신도시가 되면서 우리가 쫓겨나잖아. 그게 너무 슬퍼요.
Q. 이곳 마을회관에 올라오는 길에는 전부 창고가 있는데요, 그러면 농사는 창고가 있던 땅에 지으신 건가요?
방연희 그렇지. 원래 거기 땅에 밭을 만들어서 농사지었지. 그다음에는 창고 지어서 세를 받아먹고 살았어. 세 받으면 돈을 주니까 옛날보다 잘 살잖아요. 옛날에 농사지어서 그거 몇 푼이나 해.
김연분 세 받고 살다가 이제 없어지니 아쉬운 거지.
방연희 지금 보상해주는 걸로 어디 가서 그런 걸 살 수 있겠어. 너무 억울해.
방연희 우리 마을 사람들은 농사꾼들이 같이 밥 먹고 사는 그런 사람들이었는데 헤어지게 되고. 또 세금은 왜 그렇게 많이 떼어가냐고. 안 떼란 소리는 안 해. 자기네가 땅을 살 때 땅 사줬어? 집을 살 때 집 사줬어? 대한민국에서 세금을 내야 하는 건 알아. 그런데 이렇게 너무 많이 내서. 만약 10억을 받는다고 하면 4억을 떼 가. 그럼 나머지고 뭘 먹고 살아?
김은수 지금 양도소득세, 그런 걸 내야 한다는 거야.
Q. 이제 이주를 앞두고 계시는데 이주 시에 꼭 가지고 가고 싶은 것이 있을까요?
김연분 가지고 가고 싶은 거? 나는 가지고 가고 싶은 게 장독 밖에 없어. 장독이 수십 개인데 다는 못 가져가지.
방연희 가지고 가고 싶은 거? 가지고 갈 거면 다 가지고 가고 싶지. 그런데 갖다 둘 데가 없어.
Q. 다들 이주 계획을 세우셨나요?
방연희 다 이사계획을 세웠지. 이제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가고. 뿔뿔이 흩어져.
Q. 지금 토지 보상 절차가 완전히 끝난 상태인가요?
방연희 토지 보상은 거의 다 끝났어요.
Q. 토지 보상 절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방연희 못마땅하지.
절차가 길어지는 것도 힘들지만, 보상도 어느 정도 우리 마음에 들게 해줘야지. 너무 안 해주면 우리가 이사해서 나가는 게 힘들지. 그리고 지장물 검사도 좀 잘해서 어느 정도 쳐 줘야지.
김연분 그 값을 어디 다 쳐 줘? 반도 안 쳐주지.
홍경순 더 나온 집은 더도 나왔대.
Q. 어머님들께 교산, 궁안마을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방연희 궁안마을도 마을이고, 춘궁동도 그렇고, 우리가 옛날부터 이렇게 다 같이 살던 곳인데. 어머니, 아니 할아버지, 할머니 같은 존재죠. 그렇지 않아요? 내가 죽을 때까지 여기서 살아야 하는데, 지금 죽을 때가 다 되어가는데 쫓겨 나가는 게 너무 아쉽지 않아요?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이 노인네들을 또 다른 데로 다 모시고 간다는 거 말이야. 그것도 진짜 안 되는 거야. 왜냐하면 여기서 평생 사셨다가 여기서 돌아가시고 여기에 묻혀 드려야 하는 거 아니야. 얼마 못 살 텐데. 젊은 사람도 아니고. 그런 분들이 지금 너무 아쉬운 거죠. 그제 제일 아쉽죠. 그리고 여기를 떠난다는 게 아쉽죠. 나는 여기서 죽을 줄 알았는데….
Q. 앞으로 여기에 교산 신도시가 생기는데 미래의 교산 신도시에 바라는 점이 있나요?
김연분 신도시가 되면 젊은 사람들이 좋은 데서 잘살게 되겠지. 우리네는 지금 나이가 팔십이 넘으니까 이제 신도시 짓는 것도 못 봐요. 그게 아쉬워요.
Q. 마지막 질문 드릴게요.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문옥자 자식들 잘사는 거죠.
정경애 우리 식구들, 애들, 다 건강하게 잘 살면 돼. 그게 꿈이지.
방연희 나는 나 아프지나 말고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궁안마을 잘 되는 것도 보고, 또 서로 다 잘 되는 거 보면서 여기 여러분들과 다 같이 건강하게 잘 만나면서 죽을 때까지 재밌게 살다 죽었으면 좋겠어요.
김연분 아프지 않고 죽는 거, 그게 좋은 거야. 그게 제일 좋은 거야.
그리고 여기에 아파트가 들어서서 고골 내 집 자리에 무슨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거만 보고 죽었으면 하는 게 내 소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