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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시 상사창동 카페에서 교산지구를 기록하는 이왕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와의 인터뷰,

2022년 5월 30일

 

여기서 처음에 사진을 찍었을 때 

한 주민이 굉장히 반대했어요. 

막 욕을 할 정도로요. “내가 여기서 쫓겨나는데 뭐가 좋은 일이라고 사진으로 기록하느냐?” 하시면서요. 그래서 제가 설명해 드렸죠. 

사실은 신도시 개발로 없어지니까 기록으로 남겨놔야 

후대에 이곳을 보여줄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설득해서 그다음에 이분이 오히려 저를 아주 반갑게 해주셨어요, 아침 일찍 나오면 “아침은 먹었냐? 안 먹었으면 

우리 집에 가서 먹자.” 이렇게 해주세요. 

그 정도로 이분들이 좋은 분들이에요.

 

Q.  하남에는 언제부터 거주하고 계시는가요? 

이왕호  하남에 들어온 지 35년 가까이 됩니다.

Q.  교산지구 일대를 찍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이왕호   결혼하기 전에는 형님 카메라를 빌려서 가끔 찍었어요. 그때는 정말 초보였죠. 그러다가 결혼해서 명일동에 살다가 하남시로 오게 되었어요. 하남시로 들어온 지가 지금 한 삼십여 년 가까이 됐는데요. 처음 왔을 때 하남문화원에서 하는 사진 수업이 있었어요. 거기서 사진 교육을 들으면서 초대 회장으로 제가 <사진 이야기>라고 하는 클럽을 만들었어요. 사진을 처음 찍기 시작할 때는 여러 가지를 찍었죠. 예를 들면 풍경 사진을 찍고, 그다음에 꽃 사진. 그런 것들을 찍었어요. 일명 예쁜 것을 찍었는데 찍다 보니 저한테 맞는 것이 바로 기록사진이었어요. 다큐멘터리 사진이요. 그래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시작한 지 지금 한 25년 이상 됐을 거예요. 하나씩 여기저기 기록하기 시작했죠. 그 전에 제가 한 십몇 년 전에 여기 고골에 왔을 때, 특히 법화골, 이곳이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법화골에 돌담으로 된 집이 많이 있었고 당시에 여기에 화가들이 와서 있어요. 화가들 한 열두 명이 길바닥에 앉아서 벽화를 그리고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법화골이 좋아서 자주 와서 사진을 찍었는데… 여기가 이제 3기 신도시 발표가 났잖아요. 3기 신도시 발표가 나면서 “이곳을 내가 기록해야 하겠다.” 마음먹게 되었죠.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 찍고 있는 거예요.

Q. 교산신도시가 발표 난 후니까, 2년 정도 되신 거겠어요. 

이왕호  교산 일대를 찍기 시작한 건 2년 정도 됐지만 그전에도 가끔 한 번씩 와서 찍었어요. 그래서 길게는 십수 년 뭐, 20년 가까이 찍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죠. 그런데 이제 안타까운 건 예전에는 필름 카메라로 찍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필름을 못 찾아서 조금 아쉬운데, 찾게 되면 발표가 될 거예요. 그게 좀 아쉬운 부분이 있어요.

Q. 고골에 관한 사진집 두 권을 출간하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이왕호  『하늘에서 본 고골』과 『고골 이야기』라는 사진집을 두 권 냈습니다.

Q. 『하늘에서 본 고골』 같은 경우는 드론 촬영으로 하남 교산지구 일대를 찍은 사진집인데요. 드론을 직접 배우셔서 촬영하신 걸까요?

이왕호  배운 게 아니라서 사실 아마추어예요. 제가 용감했던 것 같아요. 아마추어였는데 나름대로 찍어서 빨리 보여드려야 하겠다고 생각해서 급하게 찍었어요. 

Q.  고골 일대를 촬영하실 때 작가님께서 좀 더 좋아하시는 장소가 있을까요?

이왕호  동네마다 다른데요. 여기가 이제 고골의 옛 모습이 별로 남지 않았어요. 동네마다 옛 모습이 남아 있는 곳은 몇 군데 정도밖에 없어요. 그래서 좀 안타까워요. 옛날에 법화골에서 전통 장례식 같은 걸 했는데 그 장면은 제가 14년 전에 찍어놓은 사진에도 있어요. 그때의 장례 절차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르죠. 상여 매고 옛날식으로 했었죠. 

Q.  촬영 다니실 때 꼭 남겨야겠다 하는 장면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왕호  아무래도 옛 모습이죠. 옛 모습이 남아 있는 곳이 몇 군데 있으니까 그런 곳을 집중해서 찍습니다. 계절별로도 찍기도 하고, 수시로 가서 찍습니다.

Q.  옛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 어디일까요?

이왕호  그래도 옛 모습이 있는 데는 왜골이라는 동네입니다. 

Q. 교산지구 일대의 원주민분들 사진도 많이 찍으셨던데요. 원래 아시는 분들이셨나요?

이왕호  지금은 거의 다 알죠, 웬만하면. 원래는 몰랐어요. 하나둘 알게 되고 지금은 고골 사람들은 웬만하면 다 알아요.

Q. 거의 매일 촬영하러 나오시나요?

이왕호  매일 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제가 시간이 되면 특별한 일 빼놓고는 거의 매일 온다고 보셔도 과언이 아니에요. 

Q. 원주민분들께서 내년 상반기에 이주를 계획하고 계시는데 그때까지는 계속 찍으실 계획인가요?

이왕호  그렇죠. 여기가 사라질 때까지 제가 기록할 겁니다. 이곳을 이 잡듯이 구석구석을 다 기록하려고요. 

Q. 맞아요, 지금 이곳이 사라진다는 게… 지금의 1분 1초가 지금, 이 순간밖에 없잖아요. 

이왕호  사라지고 나면 다시는 회복이 안 되거든요. 그 때문에 안타까운 거예요. 돈으로 이렇게 다시 만든다고 생각해 봐요. 돈으로는 만들 수가 없어요. 그래서 너무 안타까워요. 그래서 기록하는 것이고요. 

Q. 그런데 조금 더 뭐랄까… 이곳을 기록하시는 작가님 본인만의 이유가 있을까요?

이왕호  아까 말씀드렸듯이 저는 하남시에서 삼십오 년 정도 살면서 여기가 제 고향은 아니지만 고향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시대가 많이 변하고 있잖아요. 계속해서 변하고 있는데, 그래서 이곳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이십여 년 동안 하남을 찍었다고 했잖아요. 하남시, 미사리, 산곡, 지금 없어진 미사지구. 거기 제가 한 이십만 장 이상 찍어놨어요. 미사리도 제가 5년 동안 매일 가다시피 해서 기록해 놨어요. 

이왕호  약 10년 전에는 하남이 그린벨트가 97%였어요. 그때는 얼마나 좋았겠어요. 97%가 산이었고 그린벨트였으니까요. 지금은 많이 망가지고 있는 상황이죠. 

이왕호  이 고골이 하남시 내에서도 깡촌이었대요. 그래서 사람들이 너무 순진해서 신장 시내 사람들한테 가서 얘기할 때도 부끄러워할 정도였대요. 그렇게 순수하신 분들이셨죠. 이분들은 여기서 농사만 지으셨잖아요. 이곳에는 다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이 없잖아요. 단순히 농사만으로 살았기 때문에 순진한 농사꾼들이셨죠. 

이왕호  평생을 여기서 살았는데, 조상 대대로. 이곳을 떠나가게 되니까 이분들이 갈 데가 어디 있겠어요. 그리고 이주를 하면 이런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겠어요? 이분들 아마도 아파트에 들어가게 되면 쉽지 않을 거예요. 매일 나가서 밭에서 일하시던 분들이라 쉽지 않을 거예요. 

Q. 교산 일대를 촬영하시다가 기억에 남는 인물이나 에피소드는 무엇이 있었나요?

이왕호  많은 일이 있었지만… 여기서 맨 처음에 사진을 찍었을 때 한 주민이 굉장히 반대했어요. 막 욕을 할 정도로요. “내가 여기서 쫓겨나는데 뭐가 좋은 일이라고 사진으로 기록하느냐?” 하시면서요. 그래서 제가 설명해 드렸죠. 사실은 신도시 개발로 없어지니까 기록으로 남겨놔야 후대에 이곳을 보여줄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설득해서 그다음에 이분이 오히려 저를 아주 반갑게 해주셨어요, 아침 일찍 나오면 “아침은 먹었냐? 안 먹었으면 우리 집에 가서 먹자.” 이렇게 해주세요. 그 정도로 이분들이 사실 좋은 분들이에요.

Q. 그런데 그분들께서 어떤 마음이신지는 조금 이해가 가요. 본인들이 대상이 됐다는 생각에… 저도 그 부분이 인터뷰하면서 가장 조심스럽거든요.

이왕호  그리고 제가 LH공사의 직원이 아니냐고 오해하시는 분들도 계셔서요. 처음에는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 있었어요.

Q. 그러셨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혼자 작업을 하시고, 어떤 공식적인 단계가 없기도 해서요. 그래도 기록한다는 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Q. 사진을 찍으실 때 좀 더 집중하고 싶은 주제가 있을까요?

이왕호  교산 일대는 마을별로 특색이 있거든요. 그러한 각각의 특색을 좀 더 찾아내고 싶어요. 또 그런 부분을 기록하는 일에 더 집중하고 싶어요. 법화골에 산곡천이라는 곳이 있는데요. 거기 예전에 음식점이 많았던 거 아세요? 일명 영양탕을 파는 곳이 그곳에 많았어요. 제 기억으로는 몇십 군데가 있었거든요. 그게 처음에 생기게 된 이유가 뭐냐 하면, 그곳이 계곡이니까 서울 사람들이 많이 놀러 왔었어요. 계곡에서 놀다가 주위에 사는 사람들에게 “우리 놀러 왔는데 배가 고파요. 밥 좀 해주세요.” 그렇게 해서 장사를 시작하게 된 거예요. 화장실도 못 쓰지, 먹을 데도 없지, 보니까 여기 주민들한테 부탁하다 보니까 생기게 된 거죠. 주민들에게도 좋은 기회잖아요. 그래서 장사를 시작하게 돼서 예전에는 이 계곡에 식당들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요. 

Q. 많이 다니시고 샅샅이 찍으시는데 보존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사물이나 자료 등이 있나요?

이왕호  제가 실내에 들어가서 찍은 집이 여러 집이 있는데요. 좀 오래된 집, 옛날 모습을 간직한 집의 실내를 다 찍어 두고 싶어요. 또 이분들이 오랫동안 써왔던 물건들, 그런 것들을 좀 많이 기록을 남기려고 해요.

Q. 그러니까… 이곳 사람들의 시간이 축적된.

이왕호  그런 물건들이요. 그리고 지금 여기 이분들이 이사하게 되면 예전에 쓰던 물건을 가지고 가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물건들이 있어요. 그걸 제가 현재 역사박물관(하남역사박물관)에 소개해요. “이런 게 있으니까 기증하고 싶다.”라고요. 그리고 주민들에게 설득하죠. “이거 버리시면 안 됩니다. 이거 판다고 돈 얼마 못 받습니다. 역사박물관에 기증합시다.” 하고요. 그래서 지금 기증하는 집이 여러 집이 있습니다.

Q. 어떤 물건들이 있을까요?

이왕호  옛날에 제사 지내던 물건들, 오랫동안 50년, 100년 가까이 쓴 상, 소쿠리 등은 100년 이상 된 것도 많으니까요. 

Q. 맞아요. 그렇게 시간이 쌓인 물건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거라서요. 

Q. 원주민분들께서 토지 보상 절차에 대해서 하시는 말씀이 있을까요?

이왕호  이제 그런 말들을 하시죠. 여기가 “3기 신도시”로 발표가 나면서 정부에서 강제로 뺏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렇게 뺏으면서 세금을 낸다는 거는 말이 안 된다고 해요. 양도세가 무려 30% 이상이에요. 30%면 어마어마한 돈이거든요. 예를 들면 100억 원을 보상받으면 30억 원 이상을 내야 하는 건데요. 원주민들이 팔고 싶어서 파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가지고 있는 것을, 내가 사는 집을 뺏기는 건데 거기다 세금까지 부과하니까 조금 많이 힘들어하시더라고요. 

Q. 실질적으로는 세금 부분이 가장 부당하게 느껴지실 것 같아요.

이왕호  그리고 여기서 넉넉하신 분들은 괜찮겠지만 형편이 좀 좋지 않은 사람들은 이거 팔고 나가서 아파트 하나도 못 사는 사람이 많아요. 예를 들어 20억을 보상받는다고 하면 세금 떼고 뭐 떼고 하다 보면 근방에 집 한 채 겨우 사게 되는 거예요. 

Q. 아파트 한 채와 이 땅을 바꿀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이왕호  비교가 안 되는 거죠. 

Q. 비슷한 질문이긴 한데요. 교산일대 내에서 꼭 기록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지역이 있을까요?  

이왕호. 성광학교요. 성광학교는 이곳에 계속 남는다고 해요. 원래는 없어지기로 했는데 문제가 잘 해결됐나 봐요. 그곳이 장애인 학교인데 이곳을 신도시로 개발하게 되면 갈 곳이 없어지거든요. 반대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죠. 기존에 있는 건 할 수 없지만 새로 옮긴다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그래서 성광학교는 교산에 그대로 머물기로 결정 난 것 같아요. 다행인 일이죠. 거기 교장 선생님도. 사람 참 좋으신 분으로 알고 있어요. 

Q. 작가님께 교산이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왕호  어머니 같은 동네라고 생각해요. 특히 지금의 고골은 하남시의 어머니 같은 곳이다, 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Q. 뭐랄까… 가장 정답에 근접한 답변이신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은 못 했지만…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이왕호  생각해 보세요. 이곳의 자녀들이 어머니가 없어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Q. 그렇네요.

이왕호. 아예 없어지는 거죠.

Q.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그 상실감이…

갈 수 있는 것과 갈 수 없는 건 너무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기록하는 거고요. 

미래의 교산 신도시에 바라는 점이 있을까요?

이왕호  저는 여기다가 아파트를 세우는 건 원치 않아요. 개인적으로는 여기를 만약에 개발한다면 약간 옛 모습을 남겨놓은 예를 들면 한옥촌이라든가 그런 식으로 이 동네를 정말 아름답게 만들면 좋겠어요. 개발이 된다고 해도 자연적으로, 자연을 어느 정도 살려가면서 해야 해요. 그런데 그렇지 않다면 글쎄… 좀 그렇습니다.

Q. 일대의 지형을 유지하는 방식이 좋을 것 같아요. 

이왕호  여기 주민 중에 한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분 집이 굉장히 좋아요. 누가 봐도 탐스러운 집인데, 정원을 기가 막히게 해놓으셨거든요. 그분께서 “자기는 집이 없어지는 건 그래도 좀 낫다. 그런데 평생을 가꿔온 정원이 없어진다는 건 너무 마음이 아프다.”라고 하시더라고요. 

Q. 같은 나무, 같은 숲, 그 공기와 그 향은 가져가거나 어딘가에서 구할 수가 없잖아요. 그리고 항상 내년에 이 꽃이 또 필 거라는 당연한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그런 희망과 기대까지 없어지게 되는 거니까요. 모두 같은 마음이실 거예요.

Q.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이왕호. 저는 하남시에서 20여 년을 사진으로 기록하다 보니 그걸 나중에 책으로 하나씩 하나씩 만들고 싶어요. 그런 소망이 있습니다. 경제적인 여건만 된다면 사진을 모두 모아서 책으로 내고 싶어요.

Q. 처음 교산 일대 사진을 찍으셨던 2년 전과 지금 좀 달라진 게 있을까요?

이왕호  있어요. 예전에는 그냥 피상적으로 봤던 동네가 이제는 피부로 느껴지죠. 그러니까 마치 내 고향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다가오고 있죠. 그 하나하나가, 길에 풀 한 포기조차 이제는 제게 귀하다고 보시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