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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시 상사창동에서 고골카페를 운영하는 백경자 사장님과 인터뷰,

2022년 5월 24일

 

이제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자꾸만 아쉬움이 남아. 

그동안에 여행을 다녀와도, 집에 와선 “우리 집이 진짜 펜션이네.” 했어. 

우리 집 3층에 올라가면 창문 밖으로 전체가 다 산이 보이고 

사람들 지나가는 거 다 보이고 그러는데, 여기가 진짜 좋은 곳인데… 

그동안 참, 여기서 잘 누리고 살았다는 

감사함이 요새 매일 들어.

 

Q. 자기소개 간단히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백경자  하남시 고골 상사창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살고 있는 백경자입니다.

Q. 여기 사신 지는 얼마나 되셨을까요?

백경자  저희가 97년도에 왔으니까 25년 되나? 25년… 오래됐죠. 강동구 명일동 삼익아파트 살다가 여기에 집을 직접 지어서 왔습니다. 

Q.  그럼 97년 이후부터는 계속 여기서 사신 거죠? 

백경자. 네. 25년 동안이요.

Q. 2019년도에 『교산기록』 인터뷰 당시에는 신도시가 발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는데요. 그때와 지금이 달라진 부분이 있을까요? 지금은 보상 단계라 외적으로는 아직 변한 게 없지만요. 

백경자  아무것도 변한 게 현재는 눈에 보이지 않죠.

백경자  달라진 거는 마음이 달라진 것 같은데…

Q. 토지보상이나 이주 절차의 단계가 어느 정도 진행이 됐을까요?

백경자  지금은 땅 보상만 나온 상태이고 건축물 보상과 지장물 조사해서 간 지가 지금 한 달 정도 됐으니까, 지금 아직 뭐 이렇다 저렇다는 소식이 없고요. 2월 말까지 보상 금액이 나온다고 한다는데, 그것도 또 늦어질 수도 있다고 해요. 토지보상은 지난해 다 됐어요. 

백경자 그러니까 지금은 땅에 대한 보상만 나온 거고 건물 보상, 지장물인 나무, 이런 거 있잖아요, 나무까지. 나무 같은 것도 우리한테는 큰 재산이지만 그분들에게는, 국토부에는 개발에 지장을 준다고 지장물(支障物)이라고 그러잖아요. 

Q. 지장물이 그런 뜻이었나요?

백경자  응. 지장물이라는 게 우리한테는 재산인데 그분들에게는 지장물이야. 나한테는 소중한 내 재산이 그분들 사업하는 데는 지장을 받는다고 지장물이라고 했는지… 그 말도 고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좀 기분 나쁘더라고. 그 뜻을 알고 나니까. 

Q. 저는 오늘 이곳에서 둘러보면서 여기에 가꿔놓으신 화분과 나무, 이런 것들 모두 손으로 몇십 년 가꾸신 건데, 없어지게 돼서 아쉽다고 생각했거든요. 

백경자  다 우리가 심어놓은 거지. 조경 아저씨들 불러서 다 하나하나 다 심어놓은 건데… 이제 보상 단계의 거의 끝에 가서는 나무를 옮기는 가격만 준다? 뭐 그런 말이 있어요. 하나당 얼마씩, 이렇게 정해진다는데 모르겠어요. 어떻게 나올지…

Q. 교산지구 일대에서 꼭 기록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장소가 있을까요? 또는 자신만의 소중한 공간이 있나요?

백경자  여기 <고골 카페>요. 여기가 내 놀이터고, 얼마나 소중한 공간인지 몰라요. 왜 그러냐면 아침에 눈 뜨고 집에서 할 일 해놓고 나면 이제 갈 데가 있는 거야. 그러면 집에서 바로 내려와서 카페에 와서 음악 틀어놓고 손님들 만나고. 사람들과 힐링할 수 있는 공간도 되고. 여기 고골이 쉼터가 마땅치가 않아. 산책길은 있어도 음식점도 오리, 백숙 이런 거만 하는 집이 많지. 이렇게 몇천 원 내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없잖아요. 그래서 이 <고골 카페>를 처음으로 내가 여기에 열었거든요. 그랬을 때 거기에 대한 자부심이 많이 생겼어요. 삼천 원으로도 쉴 수가 있는 공간을 여기에 만들었다는 거. 돈을 생각하면 못하지. 만약에 내가 이 카페를 세 얻어서 했으면 이렇게 못하지. 집세만 내는 것만 해도 꽤 되잖아요. 그런데 마음을 다 비우고 하니까 항상 감사한 마음이 들어.

백경자  그러다 보니까 이렇게 손님이 오시는 일에도 감사하고. 여기가 사람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잖아요. 음식점 할 때는 사실 내가 사람들하고 커뮤니케이션을 못 했어. 주방에서 일하느라고. 사람들과 앉아서 얘기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어요. 그런데 이 카페를 하다 보니까 내가 좋아하는 그림도 그릴 수 있고 또 사람들 만나서 대화할 수 있는 시간도 있고. 그런 게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매일매일 집에서 계단을 내려오면서 감사한 마음이에요. 삼 층에서 일 층으로 내려올 때 “오늘도 너무 감사한 날입니다. 일터로 갑니다.” 하고 기도해요. 

백경자  손님들이 오시면서 뭐라고 그랬냐면 “사장님은 언제 이렇게 좋은 자리에다가 집을 지어서 사람들의 로망을 벌써 이렇게 이루셨냐고” 묻고 그랬어요. 큰 음식점을 하다가… 음식점이 너무 힘들잖아. 직원 구하기도 너무 힘들지. 그러다 보니까 여기서 뭐를 해야 할까 하다가 이 카페를 하게 됐는데, 하고 나서 보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그런데 마음은 비워야 해. 욕심을 부리게 되면 이걸 못해. 여기서 식당을 해야지. 파전 팔고 막걸리만 팔아도 더 많이 벌겠지. 그리고 카페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으면서 또 지루한 시간이 있어요. 그래서 그림도 시작한 거야. 

백경자  손님만 기다리기에는 너무 지루해요. 근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보면 시간이 언제 갔는지 모르고 또 그림 하나를 펴놓고 있다가 커피 만들어주고 나서 또 앉아서 그리게 되고… 이 그림으로 시간도 잘 보냈고. 어려운 시간을 내가 잘 버텨낸 거 같아. 이 큰 건물을 오랫동안 가지고 버텨내기가 쉽지 않아. 남들이 볼 때 저 큰 집에서 남 보기에는 너무 좋아, 그런데 이게 쉽지 않아요. 그래서 아무것도 안 사고 싶은 거야. 지금 있는 거나 잘 지키고 진짜 똘똘한 거 하나로 가지고 가야지 해.

Q. 토지와 건축물의 경우 택지로 보상을 받게 되나요? 

백경자 우리는 이주자 택지지. 그래서 이주자 택지 입주권 분양을 받는다고 하거든.

Q. 그럼 그때 가서 추첨하면 되는 건가요? 

백경자  추첨이 아니고 아예 주택이 나온대. 우리가 지금 3층 주택으로 살았기 때문에 추첨이 아니고 입주가 되는 건가 봐. 그런데 돈을 내야 해. 만약에 이주자 택지가 평당 한 1,800만 원 하면 우리한테는 한 900만 원 정도에 줄 거야. 그렇게 그러면 80평에서 100평 정도인데, 저기 감일동은 80평이거든? 여태까지 다 80평이야. 근데 여기 지금 대책위원회에서는 100평을 달라고 그러나 봐. 근데 그게 쉽지는 않을 것 같아. 80평이라도 어디야. 

백경자 그러니까 택지 조성한 원가로 주니까 우리 원주민에게 조성해 놓은 원가에 구백만 원씩 주면 우리가 보상받은 돈으로 다시 사는 거야. 짓는 건 우리 돈 들여서 짓는 거지. 이주자 택지, 그러니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딱지가 되는 거죠. 

Q. 택지에서 위치는 추첨일까요?

백경자 더 좋은 자리가 있죠. 위치가 좋은지 아닌지도 나중에 상황을 봐야지. 그리고 그걸 꼭 짓는다고 생각 안 하고 일단은 받으니까, 그걸 사서 잔금 내고 나서 지을지 안 지을지 생각해야지. 

Q. 그럼 지금 구역 위치는 정해졌나요? 

백경자  이주자 택지 짓는 장소가 고골 초등학교 있는 쪽이라고 그러지 않았나?

백경자  지금 지도가 나왔다고 하는데 나는 자세히 못 봤어. 그런데 좋은 자리는 안 준다고 하더라고요. 고골초등학교 근처라고 그러는 것 같던데. 아마 좋은 자리는 잘 안 주려고 해요. 

백경자  아파트가 밀집되게 해주고 이주자 택지는 잘 모르겠어요. 

Q. 이주자 택지도 나오고 아파트 분양권도 나오나요? 

백경자  그중에 하나만 택하는 거야. 그런데 이주자 택지를 택해야지. 더 비싸니까.

앞으로 팔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을 거예요. 원주민분들이 다 연세가 많으시니까. “아유, 우리 나이에 그걸 왜 또 지어?” 하는 분들도 많아요. 

Q. 그럼 이곳에서 사시면서 가장 기억하고 싶은 추억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 같은 거요. 

백경자  아름다웠던 시절… 그 멋모르고 처음 음식점을 시작했을 때. 그때 30여 년 전에 처음 여기서 풍경채 추어탕 집을 열었을 때인 것 같아요. 열정이 있었지. 막 가락시장 가서 사다 나르고 신이 나서 그랬는데. 그때는 젊었으니까 열정이 넘치고 뭐든 새롭고. 그때가 너무 행복했고…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내가 왜 그랬을까 싶어. 지금에 와서는 왜 음식점을 시작했는지 모르겠어. 

Q. 이곳에서 기억하고 싶은 사람이나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풍습이 있을까요? 이곳에서 계절마다 해왔던 일이라든지, 이곳에서만 할 수 있었던 일이요. 

백경자  음식점 할 때는 그런 마음의 여유가 없었거든. 그런데 카페를 열고 나서 해마다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나면 낙엽 축제를 해요. 처음에는 낙엽을 조금 쓸어내다 보면 이제 한도 끝도 없이 계속 떨어져요. 그러면 나뭇잎을 저기 마당에다가 다 쌓아놔. 이렇게 수북하게. 그래서 낙엽 축제를 해. 우리 지인들, 그림 그리는 선생님들과 학생들 불러서 한 4시부터 시작해서 저녁까지 여기서 저녁도 먹으면서 낙엽 축제를 해. 그 사진도 있어요. 낙엽 축제하는 사진도. 

Q. 이곳을 떠나시기 전에 여기서 겪은 인상 깊은 일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려요.

백경자  내가 풍경채 추어탕 집을 할 때 김영삼 대통령님이 우리 집에 두 번이나 오셨어요. 경호원들과 다 같이 오셔서 철갑상어 해드렸을 때. 그때는 하남시청에서도 많이 오고 근처 선생님들도 많이 왔었어요. 

백경자  그리고 처음에 멋모르고 식당을 시작했을 때는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 알아서 해주는 건 줄 알았어요.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 그때만 생각하면 너무 힘들어. 그래서 끝에 가서는 내가 다 했지. 근데 아무것도 모르고 식당을 하던 그때가 좋았어. 왜 그러냐면 그때는 주인이 아무것도 모르니까 일하시는 분들이 멋대로 다 하잖아? 주인이 잔소리도 하지 않지, 주방에 들어오지도 않지. 그러니까 내가 뭘 모르니까 그때가 좋았어. 근데 나중에 하나 하나 보다 보니까 ‘저분이 왜 저렇게 하지? 어머, 왜 저렇게 하지?’ 이게 눈에 보여. 몇 년 하다 보니까 그게 눈에 보여. 그래서 직원들한테 “이렇게 좀 해달라.”고 하면 직원들은 이제 그게 듣기 싫은 거야. 그래서 뭐든지 내가 할 줄 아는 걸 해야 해. 그걸 나중에 깨달은 거지. 그래서 나는 식당은 도저히 안 되겠다, 생각해서 카페로 업종을 바꾼 거야. 

백경자  그래서 끝에 가서는 내가 이제 직접 하게 됐어. 대통령 오셨을 때도 내가 직접 했어. 데코레이션하는 것도 내가. 고기를 이렇게, 회를 떴을 때도 이렇게. 들꽃 따다가 놓는 것도 내가 하고 그랬는데, 이게 한계가 있어. 누가 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 음식을 많이 하는 음식점들은 직원들이 해야 하는데 나는 그걸 잘 못 한 것 같아. 사람 시키는 걸, 잘 못 했던 것 같아. 

Q. 어려운 일이죠.

백경자  그때 그 멋모르고 했을 때. 그때가 제일 좋고 행복하고 그랬던 것 같아. 알고 나니까 너무 힘들었어. 

Q. 맞아요. 많은 일이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어느 정도 몰라야 시작할 수 있는 부분도 있는 것 같고요. 

Q. 이제 이주는 내년쯤 시작하시는 걸까요?

백경자  내년일지 후년일지 모르겠네.

Q. 이주하게 되시면 가능하든 불가능하든 고골에서 가지고 가고 싶은 게 있을까요? 

백경자  다 가져가고 싶어. 

가져가고 싶은 거야 다 가져가고 싶지만 다 가져갈 수가 없는 거잖아요.

Q. 그럼 불가능해도 한 가지만 꼽으신다면요?

백경자  여기 이 장소지. 여기, 이런 자리. 이런 자리가 지금 어디 이 근교에 있겠어요. 

 Q. 지금까지의 토지 보상 절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백경자  지금 지장물 조사까지 불합리한 건, 그건 사람 욕심이 한도 끝도 없잖아. 많이 받으면 좋죠. 뭐 많이 주면은 좋은데, 그런데 지금 시기적으로 부동산이나 아파트, 땅값도 너무 많이 올라 있는 상태라 지금 이 보상을 받은 금액에서 대출받아도 양도세가 또 너무 많아요. 또 양도세 내고 나니까 사실 남는 돈은 이만한 데를 살 수 없는 돈이야. 그러니까 부족한 거지.

Q. 현재 부동산이 너무 올라버린 것도 크게 영향을 받으시겠어요. 또 양도 세율이 엄청 높잖아요. 

백경자  그래서 나는 양도세는 이럴 때는 면제를 해줘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런데 그게 또 이제 안 낼 수가 없잖아요. 매달 며칠까지 1차, 2차, 3차로 나눠서 내기는 다 냈는데 그런 게 참 속상했어요.

Q. 대부분 여기 원주민분들이 토지 보상에 관한 합의를 하셨나요? 

백경자  그렇죠. 다 받은 상태일 거예요. 근데 아마 안 받은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지금 한 20%인가? 15% 정도는 받지 않은 사람도 있어요. 우리 동생도 아직 안 받았어요. 동생도 초이동에 땅이 천 평이 넘나? 그런데 아직 안 받았어요. 변호사에게 맡겼다고 하더라고요. 법무법인에 맡겼다고. 고속도로 밑에 창고가 있거든요. 

Q. 계속 싸우는 것도 힘든 일인데요. 

백경자  그렇죠.

(동네 주민분께서 카페 정원에서 앵두 열매를 한가득 따서 가져다주셨다.)

백경자  어머! 이거 처음 먹어보지?

Q. 

이게 뭐예요?

백경자 여기 집 바로 뒤에 있는 앵두야. 

이런 나무도 너무 아까워. 이 나무도 지금 키운 지 굉장히 오래됐는데. 이 앞에 있던 거를 남편이 뒤쪽으로 옮긴 거야. 이따 가서 나무 좀 한 번 쳐다봐봐. 나무가 얼마나 크게 잘 자랐는지. 이 빨간 열매가 해마다 달려서 손님들이 와서 다 따 먹고 또 술도 담고 또 설탕물에다가 재어 놓기도 해. 그런 열매인데, 이 나무도 여기다가 이제 두고 가야 하잖아. 이런 것들, 오래오래 함께했던 이런 나무들 이런 게 진짜 정이 들은 거지. 남이 볼 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Q. 앞으로 이주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백경자  지금 너무 많이 아파트가 오르고 땅값이 올랐기 때문에 아무 계획이 없어요. 건축물에 대해서도 그렇고, 지장물 보상이 나와서 그 돈을 합해서 생각해야지. 지금 보상받은 돈으로 뭘 하긴 좀 그래요. 그러니까 보상이 다 끝난 후에 계획을 세워야지.

백경자 지금 주변에선 아파트를 샀다는 말도 하는데 그것도 1가구 2주택 세금 문제도 있고, 요새 부동산이 말이 많잖아. 그래서 지금 뭐 아직 계획을 못 세우고 있어요. 

Q. 지금의 부동산 시장이 너무 불안정해서 그 부분에도 크게 영향을 받을 것 같아요. 

백경자  그래서 일단은 전세로 가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Q. 어느 지역으로 생각하고 계시나요? 

백경자  여기 하남의 미사, 미사 쪽에. 

Q. 미래의 교산 신도시에 바라는 점이 있을까요?

백경자  미래의 교산 신도시라… 이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신도시를 만들면 좋겠어요. 우리는 지금 이렇게 자연 속에서 살아서 이런 곳이 너무 좋아요. 그런데 다음에 신도시가 돼서 여기 왔을 때 “여기가 내가 살던 곳이 맞아?”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끔 “아, 여기가 거기였구나.” 이렇게 좀 알 수 있게끔 자연을 잘 살려서 만들면 좋겠어요. 

Q. 지금의 자연과 지형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백경자  그렇죠.

Q. 교산이란 사장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백경자   교산이란… 내 고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