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대 # 강동구 장기거주민 # 금가락지
한명심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48년 12월 15일생이고 전남 해남 황산면에서 살다가 82년도에 할아버지가 사고로 넘어져서 광주로 나주로 전주로 모시고 다녔어요. 83년 1월 3일에 성남으로 올 때 할아버지가 걷지도 못했는데 와서 성남 수진초등학교 앞에 문방구를 하나 얻어서 장사를 했어요. 그런데 시골로 온 사람이라 장사도 잘 못했는데 밑에 장사 잘하는 사람이 문방구를 차려서 치여서 잘 못하게 됐어요. 그러다 여름방학이나 주말이 되면 논밭으로 다니면서 일을 했어요. 우리 큰애가 3학년 때 서울 오니까 애가 크잖아요. 중학교를 서울로 와야 하니까 초등학교 6학년 때 9월에 서울로 전학을 시켜서 동북중학교를 가게 됐고 여기 성내동에서 아이들 둘 모두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어쩌다 아파트 분양을 받아서 창동에 97년 3월에 입주를 했어요. 거기서 3년 반을 살고 2000년도에 성내동으로 다시 왔어요. 이 집을 전세 안고 사서 왔지요. 2000년 10월에 사서 살다가 이참에 매매를 했는데…. 너무 속상해서 마천동, 거여동으로 집을 보러 갔는데 너무 타향 같은 거예요.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마침 부동산에서 방이동으로 데리고 왔어요. 방이동으로 오니까 마음이 푸근해요. 내 집에 온 것 같았어요. 둘째 아들이 다시 이 근처에 집을 알아봐 놓아서 그 집을 계약을 했어요.
현재 이사 준비를 하는 이유가 있나요?
할아버지가 자기는 얼마나 살지 모른다고 내 앞으로 명의 이전한다고 팔아버린 거예요. 내가 이 집(성내동의 다가구 주택) 관리를 못한다고. 힘들어서 이걸 못 가지고 사니까 장래에 나 혼자 편하게 살 곳으로 가란다고 혼자 상의도 없이 팔아버린 거예요.
현재 집에 대한 설명 부탁드려요.
2000년도에 들어와서 이 집이 너무 좋았지요. 우리 아들 둘 다 여기서 결혼시키고 작은아들 여기서 공부해서 공무원도 되었고 손주도 다섯이나 봤고요.
할아버지가 현재의 집을 파신 이유가 있을까요?
앞에 쓰레기 많이 나온다고 그러지요. 걱정 안 할 것을 걱정하는 거지. 힘들면 20년 동안을 살았겠어? 주택은 어느 주택이나 똑같아요. 세입자들 있으니까 이사 가면 이사 보내야지 이사 오면 이사 받아야지 그런 것이 힘든 거지요. 그런데 주택은 여러 집이 살다보니까 그런 것이 힘들어요. 그렇지만 사람이 어디에서 살든 그만큼은 신경 안 쓸 수가 없잖아요. 이 집은 내가 결혼할 때 73년도에 결혼할 때 금반지 석 돈을 받았어요. 그 석 돈을 결혼하고 3개월 만에 팔았어요. 이만천 원 주고 샀어요. 3개월 만에 금이 올라서 3만 3천원에 팔았어요. 그 금반지를 가지고 송아지를 샀어요. 송아지를 사서 2년 반을 키웠는데 33만원이 된 거예요. 그래서 송아지 팔고 농사를 짓고 모은 돈으로 해남에서 살 때 집터 사고 그 집에서 소 판 돈은 그 집에다 묻혀 있다가 그 종잣돈으로 전세 얻고 그 아파트로 이사 갔다가 다시 전세 안고 이 주택을 산 거예요. 이 집엔 그 반지를 판 돈도 묻혀 있는 거지요.
과거에는 어떠한 이유로 주거를 이동하게 되었나요? 그 사건이 할머님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요?
처음에 문방구 할 때는 너무 안 돼서 주말에 논밭 가서 일을 했어요. 모란고개 넘으면 수진 초등학교라고 있었어요. 거기로 애들 입학을 시켜 댕기는데 주인네가 우리가 있을 때는 대문을 열어주는데 우리가 없을 때는 문을 열어주면서 우리 애 머리를 쥐어박는대. 그 어린 것들이 집에 들어올 때 기도를 하고 들어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간도 못 돼서 집을 얻을 때 대문이 두 개인 것을 구하려고 했어요. 거기서 그렇게 살다가 아까 얘기한 것처럼 큰애가 중학교를 서울로 오게 되니까 여기로 오게 됐지요. 어디든 대문이 두 개인 곳을 찾는 거야. 2천으로 얻어왔다 2천오백을 주고 얻어왔다 4천을 주고 얻고 좀 더 나은 집이라고 왔는데 그 집도 사방이 곰팡이가 나 있었어요. 그래도 거기서 잘 살고 있었는데 아파트 분양이 당첨이 된 거예요. 그래서 그 집에서 다시 지하로 내려갔어요. 그 집에서 돈을 빼서 아파트 중도금을 쳐야 하니까요. 지하로 내려갔는데 23-43 기간이 넘었는데도 주인이 돈을 안 빼주는 거예요. 우리가 복비 내고 돈을 빼가서 창동 아파트로 들어갔어요. 거기서 돈을 좀 벌어가지고 나왔지요. 그래서 이 집을 전세 안고 들어왔어요. 조금씩 전세를 빼주고 살다 보니까 이제 전부 세입자들 사글세로 돌려서 살다가 이 날이 온 거예요. 사람 사는 게 다 굽이굽이가 그래요.
당신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집이란 것은 말도 못할 내 보금자리지요. 평생 내 몸 담고 살다가 가는 제일의 보금자리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나갔다 들어올 수 있고 비바람 치면 들어올 수 있고 의지할 곳이 있다는 건 보물 중에 보물이지요.
처음에 집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처음에 아파트 분양받아서 청소하러 가서 울었지요. 옥상에 올라가서 이 많은 집 중에서 내 몸 하나 담을 곳이 없다가 창동 아파트 갈 때 빚 한 푼 없이 분양받아 들어갈 때 나도 내 집이 있구나 했어요. 벌어먹고 살 길은 다 여긴데 집이 너무 먼 거야. 한 시간 반씩 한 시간씩을 그 아침저녁 지하철을 시달리고 다니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형제도 다 여기 살지 내가 벌어먹고 살던 터도 다 여기지 그래서 삼 년 반을 살면서 세금을 안 물었어요. 국민주택이라 그래서 3년 반을 딱 살고 그래서 좋았지요. 아파트 살다가 여기 오니까 더 넓지요. 주택이니 땅도 내 것이니 얼마나 기뻤겠어요.
가장 살고 싶은 집 또는 지역은 어디일까요?
거여동, 마천동을 다니다가 방이동으로 오니까 내 안방에 온 것 같았어요. 여기는 내 안방으로 생각하고 여기가 제일 좋다고 생각을 해요. 옛날 사람들이 전화번호 안 바뀌면 타향이 아니라고 했어요. 마천동, 거여동에서 집을 보다가 방이동 오니까 내 고향 같았어요. 여기서 창동 가기 전에 한 5년 살다가 또 여기 와서 21년째 살고 있으니 여기가 고향이지요. 그래서 여기만큼은 떠나고 싶지 않아요.
집을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내가 편한 것. 방이동 가니까 안방에 들어온 것 같다고 했잖아요.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내가 편한 거예요. 지하철 다 다니지. 시장 가깝지 더 이상 좋을 게 뭐 있어요.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갑자기 어느 날 뜬금없이 죽는 거 그게 제일 바라는 거지요. 아프지 않고 저녁에 밥 잘 먹고 자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가는 거, 그 외에 더 바랄 게 없어요. 갈 때는 다 힘들지 별 사람도. 갈 때 한두 시간 한 시간 그 시간만큼은 힘들어요. 그 시간 힘 안 들고 어떻게 가냐고요. 태어날 때도 얼마나 힘들게 나와요. 나올 때부터 힘들게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이 불쌍한 중생 자는 결에 데려다 달라고 기도하는 거예요. 우리 아홉 새끼들 건강하고 우리 진영이 공부도 안 하지만 학교도 보내고요.
3년 뒤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이루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어쩌든지 안 아프고…. 우리 나이엔 하고 싶다고 해도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도 우리 진영이 성현이, 성현이가 올해 중학교 3학년이야. 3년 후면 고3이에요. 우리 성현이 좋은 대학에 가고 우리 진영이도 좋은 대학에 가고 그러면 내 소원이 더 바랄 수도 없는 소원이에요. 성현이, 진영이, 소영이 우리 세 녀석들 안 아프고 건강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