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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대 # 대한항공 조종사 # 일산에서 30년 거주

박병환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저는 1961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시절까지 광주에 보낸 후 고려대학교에 다니기 위해서 서울로 이사를 왔고, 대학을 졸업한 후 군대를 다녀와 대한항공 조종사로 입사했습니다. 현재 30년 이상 대한항공 국제선 조종사로 근무하고 있는 박병환이라고 합니다.

현재 살고 계신 곳은 어디이고, 어떤 계기로 그곳으로 오게 됐나요?
현재는 일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안양에 살다가 대한항공에 입사 후 집값이 비싼 서울에 비해 비교적 저렴하고 직장과 가까운 일산으로 이사와 30년 넘게 살고 있습니다.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을 때 어머님이 학교 선생님이셨는데 이동이 하도 잦은 편이라 절 할머니 댁에 맡기셨어요. 그래서 제 기억의 시작은 할머니 집일 거예요. 여수에서 좀 떨어져 있는 아주 산골 마을이고 앞에 해변이 있는 전남 여천이라고… 아마 지금도 한국에서 가장 땅값이 싼 곳 중 하나일 겁니다. 산골과 걸어 나갈 수 있는 바다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학교를 보내기 위해서 광주로 왔습니다.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어머니, 아버지하고 함께 산 거죠. 어머니는 선생님,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이동이 잦아 자주 떨어져 지내기도 했지만 저희 학교를 위해 초, 중, 고 다니는 동안 광주의 집을 유지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완도로 발령을 받으면 어머니가 완도에서 자취나 하숙을 하며 근무하고 주말마다 다시 광주로 돌아와 시간을 보내시는 식이었습니다. 이후 고려대학교로 입학을 하고 서울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학교 앞 안암동에서 하숙을 했습니다. 그리고 대학 졸업과 군복무를 끝마친 후 집값이 저렴한 안양 석수동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대한항공에 입사하고 비행 생활을 하려니 직장과 집이 너무 먼 거죠. 서울 전셋집에서도 살아보고 임대 집에서도 살아보고 이곳저곳을 이사 다녀봤는데 결국 집값도 저렴하고 직장도 가까운 일산에 살게 됐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항공사 직원들… 아마 75%는 일산에서 살고 있을 거예요. 저는 살면서 직장과 집 혹은 학교와 집의 거리가 먼 것이 제일 힘들다고 생각해요. 저에게는 가까운 거리, 그 부분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일산 내에서도 여러 번 이사를 했어요. 돈이 좀 생기면 넓고 좋고 가까운 집, 돈이 없을 땐 금액에 맞는 가까운 집으로 가며 결혼하고 나서 10번 넘게 이사했을 겁니다. 집값이 오르지 않는 것 빼고는 현재 일산 아파트에서 만족스럽게 잘 살고 있습니다. 저는 아파트를 굉장히 선호해요. 저는 어려서부터 단독 주택부터 아파트 등 다양한 곳에서 살아왔는데 아이들 교육이나 직장생활 하는데 아파트만큼 좋고 편리한 곳은 없는 것 같아요. 쓰레기, 분리수거도 관리사무소에서 다 돌봐주고 있고, 관리비나 겨울 난방비도 일반 주택을 고려해봤을 때 적정수준이고요.

인생에 가장 큰 계기가 되었던 이동은 어떤 곳이었나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힘으로 아파트를 샀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조그마한 전셋집에서 48평의 큰 아파트인 내 집으로 이사 갔을 때, 세상에서 많은 것을 얻은 느낌이었어요. 큰 안정감을 느꼈죠. 저는 아이가 셋이고 어머니도 모시고 살았어요. 좁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이 사는 건 힘든 일이었죠. 큰 집으로 가니 서로의 공간이 생기고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집을 샀다는 것에 대해 인생에 엄청난 안도감을 느꼈죠. 그리고 전 30년 넘게 비행 생활을 하다 보니 주거지에 대해 굉장한 애착이 있어요. 인생의 1/3을 호텔이나 비행기에서 잠을 잔 거죠. 그래서 집은 제게 돌아갈 수 있는 마음의 중심 같은 편안한 곳이에요.

지금까지 살아온 장소에 관한 사연이나 에피소드가 있나요?
태어난 여수는 제게 아련한 추억이에요. 요즘 여수 엑스포가 생기고 나서 많이 도시화됐는데 당시 여수엔 배추밭이 있었어요. 봄이면 배추밭에 꽃이 피고 노란 나비들이 날아다녔죠. 옛날에는 인분을 이용해 배추를 키워 가까이 가면 엄청난 인분 냄새가 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동안 제 머릿속에 가장 아름다운 장소로 기억이 남아 있어요. 그리고 당시에는 바닷가에 갈 때 신발이 없었어요. 맨발로 바닷가까지 갔죠. 고무신이 있었지만 그건 생일이나 추석, 설날에 선물 받은 것이라 잘 신지 않거나 다 닳아서 못 신었죠. 바닷가에서 맨발로 뜨거운 방파제나 모래사장을 걷던 게 기억에 남아요. 여수 여천에 변두리인 산골에서 산과 들을 뛰어다녔죠. 요즘은 많이 도로가 발달돼서 자동차로도 들어가지만 옛날에는 버스 한 대만 겨우 들어가는 곳이었죠. 그 당시에는 정말 힘들고 지겨운 곳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가장 편안하고 평화로웠던 곳이에요. 한적하고 할 일도 다른 변화도 없었던 거죠. 제가 태어난 곳은 굉장히 평화로운 곳이란 기억이 남아요. 봄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그런 느낌…. 유년시절에 살았던 곳이 대청마루였어요. 큰 마루에 할 일 없이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나무 마루 위에 아지랑이가 올라오는 걸 보고 있었어요. 또 여름철에 소나기가 내리면 진흙 마당에 빗물이 튀기던… 이런 모습들이 제일 아련해요.

공간과 장소의 이동이 당신에게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집은 직장이나 학교나 취미 생활, 여행을 가더라도 항상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곳이에요. 삶의 구심점, 중심점 같은 곳이죠. 주거가 불안정하면 삶 자체가 불안정한 것 같아요. 집과 삶은 그래서 분리가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주거지는 안정돼 있어야 해요. 그리고 공간이란 곳은 나를 구성하는 또 다른 하나의 요소죠. 나를 소개할 때 ‘나는 일산에 사는 박병환입니다.’라고 소개하듯이 나를 특징짓는 또 다른 것이죠. 살고 있는 지역의 특성, 환경, 언어, 풍습, 문화가 나를 구성하는 요소가 되는 거죠. 그리고 주거란 곳은 그 사람이 생각한 가장 중요한 일, 중요한 곳에 주거지를 두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동이란 것은 항상 자기 자신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중심에 두기 위해 하는 것 같습니다.

나라와 나라의 이동 중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나라와 나라의 이동은 저에게는 아주 다반사 같은 일이에요. 예를 들어 미국 아틀란타에서 멕시코 과테말라로 갔다가 안데스산맥을 넘어서 칠레 산티아고까지의 이동이 하루 안에 이루어져요. 저에게 나라와 나라의 이동은 하나의 돈벌이 수단인 거죠. 아침엔 일산에서 일어나서 일본 나리타에 다녀와서 저녁을 일산 집에서 먹는 거죠. 워낙 교통수단이 발달되다 보니 나라간의 이동은 큰 문제가 되지 않죠.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남들이 못하는 것들, 예를 들어서 안데스산맥의 구석구석을 자세히 보는 것이나 북극항로를 비행할 때는 매번 밤하늘에 있는 오로라를 봐요. 사람들이 오로라를 보려면 돈 1,000만 원 정도 들겠죠. 오로라가 심한 날은 영화 같은 오로라를 비행하는 내내 볼 수 있었죠. 아침에 LA에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일출과 일몰의 풍경, 파리나 런던에 착륙할 때 내리치는 석양을 계속 받을 수 있는 것. 그리고 우리 태평양에 날짜 변경선이란 것이 있어요. 날짜 변경선의 동쪽에 있을 때면 우리나라의 전날에 있는 거죠. 또 우리나라로 들어오면 하루가 지나게 되죠.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날짜변경선을 지나 또다시 새해를 맞이하는 경우도 있죠. 크리스마스도 그런 경우가 많죠. 그런 일은 다반사죠. 이런 것들이 이 직업이 갖고 있는 특성과 경험 같아요. 나라와 나라의 이동은 가면 갈수록 더 쉬워지는 것 같아요. 물론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이동이 많이 힘들지만 언젠가는 좋은 날이 다시 오겠죠. 우리 인류는 항상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잘 극복해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고 삶을 더 편안하고 윤택하게 해왔으니까 그걸 믿어요. 앞으로 국제간의 이동도 더 쉬워질 것 같아요.

3년 후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이루고자 하는 일이 있나요?
자연 속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우리가 삶을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거든요. 사람들과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내가 3년 후에 자연과 함께 살아가더라도 사람이 배제되진 않아요. 사람과 어떤 연관 관계를 항상 맺는 거죠. 사람이 싫어서 자연에 들어가 살더라도 사람을 계속 의식하며 사는 거죠. 우리 삶이 절대로 혼자 살아갈 수 없듯이 항상 사회를 그리워하면서 또 사회와 거리를 두면서 자연과 함께 사는 거지, 사람을 무시하면서 사는 것은 아닌 거죠. 저도 마찬가지로 건강하게, 자연과 함께 다른 사람에게 유익하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을 찾아 조화롭게 살아가는 게 3년 후의 목표입니다. 건강하고, 돈도 많이 벌고, 자연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라!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