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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대 # 송파구 장기거주민 # 현재 장호원에서 거주

정해덕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장호원에 사는 60대 남성 정해덕입니다.

장호원에서 계속 사신 건가요?
원래 장호원에 살다가 딸이 공부한다고 해서 올라왔어요. 그전에도 송파에 살았고요.

송파구에서 사신 건 언제인가요?
1982년도에 첫째 딸이 송파구에서 태어났어요. 예전에 성동구에 살 때 여기서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어요. 낳기는 여기서 낳고 다시 내려갔다가 딸이 초등학교 3학년인가 4학년 때 올라왔어요. 처음에는 염창동으로 갔다가 송파구로 왔어요.

예전에 성동구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자동차 정비요. 옛날에는 카센터라고 안 하고 배터리 가게라고 했어요. 배터리 가게, 지금의 카센터를 했어요. 자양동에서 했지요. 78년도쯤이었는데 그때는 자양동도 가운데만 포장대로고 나머지는 비포장도로고 논밭이었어요. 딸 낳을 때가 가락동 시영 아파트 생길 때였던 것 같아요.

당시에 그 일대는 어땠나요?
그때 가게가 길동에 있었고, 올림픽공원 생기기 전에 오금동으로, 석촌호수로 해서 가락아파트로 갔어요. 그때는 다 논밭이었고요. 딸이 태어날 82년도 무렵에 가락아파트 살다가 나중에 풍납동에 살았어요. 풍납동 살다가 내려간 거였나? 생각도 안 나네. 딸이 아주 어릴 때지. 그때는 잠실서 성남 가는 거 빼고는 오금동 이쪽은 다 농노길이었어요. 그때 다 돌아다녔으니까 기억이 나네요. 옛날에 둔촌동으로 가면 제삼화학, 옛날 구론산 음료수 회사였어. 길동서 가게 하다가 가게 문 닫고 거기 차량관리과로 들어갔어요. 회사가 컸어요. 올림픽경기 전이지. 그리고 옛날에 영파여고 옆에 지금 아파트 들어선 곳에, 뭐더라. 옛날에 거기 물난리 난 적도 있었어요.

그게 언제인가요?
84년도인가? 물난리가 나서 거기가 다 잠겼던 게 기억나요. 첫째 딸과 동생 안고 천호대교 건너서 면목동 고모네로 갔어요. 배꼽 정도까지 다 잠겼어요. 가전이고 가구고 다 못 썼지. 영파여고로 다 피신 갔었으니까. 그때는 다 학교로 갔지. 다시 돌아오기까지 3~4일 걸렸을 거야. 물 빠지는 시간이 그 정도고. 애들 다 보내고 나는 동네일을 봐야 하니까. 화장실도 푸세식이어서 물을 빼려면 다니면서 하수도 다 끄집어냈어요.

사셨던 곳 중에 가장 좋았던 곳은 어디였나요?
사업했던 데가 제일 좋았어요. 길동. 지금 거기 강동성심병원 있는데요. 거기 무슨 천호역인가? 강동역인가.

지금도 그 자리가 있겠어요.
그 자리에 주상복합 같은 게 생겼어요. 무슨 은행 건물.

그 자리에는 얼마나 계셨어요?
그 자리만 2~3년 했어요. 거기는 내가 했던 자리고, 그때 안 팔았으면 지금 이렇게 살지도 않고. 몇백억이 됐을 텐데. 지금 지나다니면 배가 아프죠. 근데 그거는… 난 항상 그래. 그건 다 내 복이에요. 사람은 다 자기 길이 있는 거 같아요. 너무 어려서 사업을 한 거라고 생각해요. 후회는 안 하는데… 전화 통화하고 술 한 잔 먹고 지나가면서 친구들이 “야, 네 빌딩 저기 있다.” 하지. 지금 보니까 주차장처럼 다 뚫렸더라고요. 내가 가봤는데 주차장 세워서 다 뚫려 있더라고요. 그때 잘 나갈 때니까 억지로 팔라고 해서 판 건데. 우리 때는 사우디 갔다 온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돈 더 준다고 하니까 팔았어요.

그런 말도 있잖아요. “부동산은 파는 거 아니다. 모으는 거다.” 이런 말이요.
그때는 그런 것도 아니었어요. 그때 거기가 쌌던 게 그 뒤가 고등학교였어요. 학교 앞에는 건물을 못 짓는다고 해서 거기가 다 폐차장 이런 것만 있었어요. 지금은 지하철에 빌딩에, 그 자리가 다 빌딩이 되어버렸죠. 성심병원 그 자리도 다 폐차장이었어요.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전에는 그런 의미를 몰랐어. 그때는 아무 때나 살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생각도 안 해봤어요.

가장 살고 싶은 집이나 지역은 어디일까요?
나이 먹고, 그냥 편한 곳. 그래서 장호원에서 안 올라온 거예요. 처음에 내려갈 땐 못 살 것 같았어요. 술 한 잔 먹으려고 해도 여기로 올라와서 놀았어요. 그런데 한 10년 지나니까 거기가 더 좋아요. 올라오면 공기 안 좋고, 안 좋아. 여기 올라오면 더 힘들어요. 여기는 돈 가지고 살아야 하잖아. 시골은 돈 없이도 사는데.

집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어떤 것일까요?
원하는 거? 난 지금 이제는… 그전에는 집 같은 것도 예쁘게 짓고 싶었는데. 지금은 편하게 살 수 있는 마당 있고.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다른 것 같아. 딸이나 아들을 가만히 보면 집이 있고 편하게 살면 좋겠죠. 하지만 내 나이에는 그런 거 크게 생각 안 하고. 우리 또래 만나서 얘기하면 집수리 같은 거 하지 말자 그래요. 그 돈 가지고 그냥 쓰자고 하지. 한 오십 살만 된다고 해도 새로 짓고 싶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이 없어요. 시골집 짓는데 한 2억 들어간다면 한 달에 한 이백만 원을 쓴다면 죽을 때까지 쓰고 놀러 다니고 말지.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애들이 있으니까 안 아프고, 짐 안 되고. 그래서 지금은 안 먹던 약도 챙겨 먹고 운동도 하고 있어요.

3년 후에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어떤 게 있으실까요?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은 딱히 없어요.

3년 후에 이루고 싶은 것은요?
애들 잘 되는 거요. 나도 그때까지 건강했으면 좋겠고. 크게 걱정되는 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