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동 #옥상에 워터파크 #찢어넘긴 달력 #옥상과 마당
지금 어디에 살고 있나요?
서울 신길동 푸른숲아파트.
그 장소에 어떻게 왔나요?
육사를 졸업하고 교육을 받기 위해 성남으로 이동했습니다. 첫 부임지는 강원도 화천이었죠. 거기서 1년을 지낸 후 충주로 가서 3개월 근무하고 다시 서울 태릉에서 6개월을 지냈죠. 여기까지는 모두 독신자 숙소였어요. 그러다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금천구 독산동에서 처음으로 군관사(아파트) 생활을 했습니다. 2년 후 학위를 마치고 다시 육사아파트에 1년간 지냈는데, 낡은 관사를 허물고 새로 짓는 바람에 서울 공릉동에 있는 민간 아파트에서 2년간 지냈어요. 그 후 새로 지어진 육사아파트에서 4개월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충북 영동에서 6개월, 경기도 양평에서 1년, 충북 음성에서 10개월 정도 군관사에서 지냈습니다. 이후 육군훈련소에서 근무할 때는 민간 빌라를 얻어 20개월을 살고, 강원도 양구에서 10개월을 보내고 다시 서울 태릉으로 와 2년이 채 안되게 살다가 지금의 신길동으로 이사와 2년차를 맞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 이동했나요?
군인 중에서도 이동을 자주하는 보직이라 보통은 1년 단위로 이사했습니다. 짧게는 3개월, 길어도 2년 남짓입니다. 큰 애가 7살 때 어린이집을 옮기면서 “네가 이제부터 지낼 어린이집이야”하고 말하니 “여기서는 얼마나 있으면 돼요?”하고 되물었던 것이 생생하네요. 아이들은 친구를 만날 때 헤어질 것을 염두에 두고 깊게 사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후 진지하게 군인의 삶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가족들의 응원으로 지금도 군복무를 계속하고 있어요. 대신 저도 1년씩 보직이동하는 것을 멈추고 2년 이상 한 곳에 머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았던 장소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은 뭔가요?
빌라 옥상에 워터파크를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더운 여름날 어린아이 셋을 데리고 물놀이 가기가 버거워 계획한 것이었죠. 풍선으로 된 미끄럼틀과 큰 풀을 만들고 세간 살림을 이용해 즐거운 물놀이를 했습니다. 옥상이 있어서 다른 집 눈치, 층간소음 걱정 없이 잘 살았던 것 같아요. 바람과 볕에 바짝 마른 빨래와 비료없이도 잘 자라던 초보 농사꾼의 텃밭도 좋았구요. 점차 없어져 가는 주거의 형태가 옥상과 마당인데, 한번 경험하고 나니 몹시 그립습니다.
장소의 이동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또 다른 환경, 또 다른 삶, 또 다른 시작. 찢어 넘긴 달력이랄까요? 달라진 배경에서 다시 하루하루 삶을 살아가는 것이죠. 그러다 또 찢어 넘기는 날이 오면 다른 곳을 이동하여 살아가게 되겠죠. 자주 공간과 장소를 이동하면 삶의 속도가 빨라지는 것 같아요. 돌이켜보니 잦은 이사로 연도에 따라 그 지역과 공간이 떠오르네요. 삶은 시간으로 인식되곤 했는데, 어쩌면 공간을 채우는 일 같기도 합니다.
집이란 무엇일까요?
저에게 집이란 간이역 같은 느낌이예요. 인생의 여정에서 잠시 쉬어주는 곳. 간이역이 없다면 인생은 계속 달리고만 있겠죠.
가장 살고 싶은 집은 어디인가요?
가장 좋았던 집은 논산에 있던 빌라였어요. 4층 빌라의 꼭대기층이어서 옥상을 쓸 수 있었거든요. 아파트에 살면서 옥상이나 마당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지역 자체는 기후와 자연환경이 강원도가 좋았는데, 병원, 은행, 학원 등이 없는 건 힘들더라구요.
집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화목과 안전이 보장되는 집, 주변환경이 깨끗한 집.
현재 집에 대한 고민이 있나요?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계획이 있을까요?
군복무 기간동안에는 군관사를 지원받지만, 잦은 이동으로 인해 아이들이 정착할 집을 구하고 있습니다. 큰 아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는 집을 구해서 막내가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한 곳에 정착하는 것이 목표예요. 그러기 위해서 목돈을 더 모아야 합니다.
3년 후에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군 복무 동안은 전쟁 중이라 생각하고 가족들도 피란 떠나듯 이곳저곳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는데, 3년 후 우리가족 오붓하게 정착할 수 있는 곳을 골라 안정되게 살고 있겠지? 호현이, 채현이, 해현아! 중학생, 고등학생 되어서는 입학할 때 산 교복 졸업 때까지 입을 수 있도록 엄마아빠가 꼭 노력할게. 엄마아빠 따라다니느라 고생하는데, 잘 이겨내주어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