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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집 #즐거운 일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지금 하고 계신 일은 무엇인가요?

저는 송파 위례에서 한봉이 만두라는 만두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채령입니다.

이전에는 이 만두집 하시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을까요?

저는 영양사 일을 했었고요. 아워홈이라는 단체급식 회사에서 한 10여 년 정도 근무하다가 중소기업 단체 급식 회사를 다니고 그리고 최근에는 아워홈 계열사인 캘리스코라는 회사에서 새로운 브랜드 런칭하는 파트장을 했었어요.

회사를 다니시다가 지금 창업을 하시게 되신 거죠.

처음. 창업한 거예요. 창업 시작한 지 창업은 제가 작년 1월에 했으니까 21년 1월부터 1년 됐어요. 지금.

그러면 코로나 이후로 사업을 시작하시게 되신 거네요.

맞아요.

코로나19 시국에도 음식점 창업을 생각하시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으실까요?

제가 옛날부터 음식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많았고 영양사 일을 한 몇 년 동안 하면서 여러 식당을 오픈했어요. 단체 급식이나 구내식당을 오픈을 되게 많이 했거든요. 한 14개를 구내식당 오픈하면서 그런 노하우가 쌓여서 제가 직접 내가 오너가 돼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갖고 있었어요. 근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구내 식당은 매출이 점점 하락했어요. 재택근무를 시작하고 회사에도 잘 안 나오시고 이러니까 구내 식당은 점점 매출이 감소하는 걸 보면서 지금은 구내식당보다는 다른 것에 눈으로 돌려야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요. 그때가 위험하지만 내 가게를 한번 오픈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서 오픈하게 된 거죠. 만두라는 아이템은 포장도 많이 해가고 요즘에 테이크아웃이나 배달이나 포장이 많이 잘 돼 있는 시대니까 그런 부분과 맞는 아이템을 찾아서 재택근무를 많이 하면 집에 사람들이 많이 있을 테니까 아파트 단지 위주에 가서 가게를 창업해보자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코로나가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가게를 창업하게 된 거예요.

코로나로 인해서 일어나는 상황을 통해서 오히려 거기에 맞춰서 창업을 하시게 된 상황이네요.

네. 맞아요.

도전과 전략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혹시 한봉이 만두는 프랜차이즈인가요?

프랜차이즈는 아니고요. 한봉열 달인이라고. 네, 생활의 달인에서 만두 달인으로 나오셨던 분이 계세요. 그분 아는 사람들 몇분이서 그 가게를 지금 하고 있거든요. 제가 그 달인을 아는 사람 중에 한 명이고 지금 몇 군데 더 있는 거는 그 분을 아는 사람들끼리만 하고 있는 거예요. 만두나 메뉴에 대한 큰 줄기만 한봉열 달인 원래 했던 가게와 같이 가는 거고 나머지는 그냥 제가 알아서 저희 미래에 맞게 하고 있어요.

코로나로 인해서 생긴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으실까요? 주변에서 감염이 됐다거나 개인적인 상황이나 주변 업계의 특별한 이야기 등을 생각나는 대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에피소드라고 하기에는 좀 사소하긴 한데요. 저희 가게에 찾아오시는 어머님들이 손님으로 오시잖아요. 근데 어떤 어머님이 마스크를 안 끼고 오신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 왜 마스크를 안 끼고 오셨어요, 라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님도 모르고 그냥 나오신 거죠. 그래서 제가 마스크 여유분이 없어서 그날 그냥 페이퍼 타워를 한 장 드리면서 이거라도 일단 입 막고 가시라고 드렸는데 그 이후로는 그런 손님들이 가끔 오시더라고요 어머님들은 자꾸 잊어버리시니까 그런 어머님들이 종종 계셔서 그 이후부터는 마스크를 구비를 좀 해놨거든요. 그래서 그런 부분을 어머님들이 좋아해주셔서 또 오시기도 했어요.

혹시 방역 지원금을 받으셨을까요?

네. 받았어요.

지금 코로나19로 인한 정부의 정책이나 소상공인 지원금이나 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원금이 나온 거에 대해서는 감사한 일인데 솔직히 제가 실제로 오너로서 이제 일을 시작하다 보니까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 많긴 하더라고요 이게 방역 패스가 시작돼야 하고, 코로나가 더 확산됐다, 라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매출은 진짜 너무 변동이 큰 거예요. 매출은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하는데 방역 패스를 꼭 확인해서 손님들을 받으라고 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업주한테 벌금을 문다고 하니까 그것 때문에 사람을 더 쓰게 되더라고요 결국은 확인을 해야 되니까요. 근데 요즘은 또 최저시급이 올라가서 사람 한 명을 짧은 시간에 쓴다고 해도 기본 인건비가 100만 원을 나가야 되거든요. 근데 인건비는 100만 원이 들지만 매출은 2~300이 떨어지면 저는 감당할 자신이 없더라고요. 이번에는 어떻게 지원금이 100만 원이 나와서 그걸로 인건비를 퉁 치기 했는데 매출 감소분에 대한 지원금은 없다, 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라서요. 지원금이 조금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방역 정책에 따르다보니 인건비가 늘어난다는 부분은 몰랐어요.

그렇죠. 이게 또 벌금이 너무 무서운 거더라고요. 구청에서도 나와서 확인을 하고 가더라고요 여기서는 어떻게 방역 패스를 확인하고 손님을 받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가시더라고요 코로나 이후에 한 세 번 나오셨어요. 세 번 나오셔서 그러면 이게 중요한 거니까 체크를 잘해야겠다, 하고 인원을 더 썼는데 매출은 그렇게 늘어나지 않으니까 그러면서 그 어떤 그 책임이나 어떤 자본은 오로지 소상공인에게 떠맡기고

사실 대기업 같은 경우는 인력이 충분하니까 맞아요.시스템이 다 해주는데 소상공인은 인력을 더 쓰는 부분은 진짜 몰랐는데 이거 너무 약간 불합리하네요.

맞아요. 저도 대기업에서만 근무를 오래 해서 인력에 대한 부분은 옆 점포에서 지원을 받고 이런 식으로 많이 했었거든요. 근데 여기는 지원을 받을 게 없잖아요. 보건소에서 나와서 저희를 도와주실 것도 아니고 그런 부분이 조금 저는 지원금을 안 주실 거면 인력이라도 지원을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것도 되게 좋은 방법이네요.

봉사활동 식으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잖아요.

맞아요. 맞아요.

코로나와는 다르지만 사스나 메르스나 그리고 이전에 리먼 사태나 IMF 같은 큰 사건들이 있었는데요. 이제 그런 사건들이 당시에 사업적으로나 학업적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영향을 끼친 일이 있었을까요?

저는 크게 피부로 와닿던 거는 IMF때 아버지 사업이 망하셨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집안이 어려워져서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했던 기억밖에 없거든요. 집이 어려우니까 내가 도와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루에 세 배 건씩 해서 돈을 엄마한테 드리고 제가 그거를 어떻게 열심히 해놔야겠다. 이런 것보다는 그냥 무조건 돈 벌어야겠다. 이 생각만 했어요.

학생일 때 IMF를 겪으셨으니 더 힘드셨겠어요. 당시에 많이 어려웠었죠.

그쵸. 그쵸. 

IMF의 기억과 경험이 오히려 지금의 사업까지 시작할 수 있는 어떤 힘이 되지 않았나 싶은데요.

맞아요. 맞아요. 제가 그때 아르바이트를 하루에 3~4번 하지 않았으면 저는 아마 사회에 대한 눈도 되게 늦게 떠서 일도 잘못했을 것 같고 제가 그때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손이 되게 빨라졌거든요. 그래서 저희 만두집이 지금 인원으로 원래 안 되는 거예요. 더 인원이 더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훨씬 많이. 그렇지만 제가 손이 빨라가지고 한두 명 분은 제가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인터넷‧디지털 시대로 변화하면서 사업에 끼친 영향은 어떤 것인가요? 어떠한 방식으로 적응하고 계신가요? 인터넷을 통해 좀 더 발전되기를 바라는 방향이 있나요? 

저희는 아직도 노인이나 나이 드신 분들이 주변에 많다 보니까 전화로 배달되냐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가끔 있어요. “거기 배달하나요?” 라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가끔 계신데 처음에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아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우리가 배달을 직접 한다고 생각하시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분들은 예전에 중국 집에서 배달을 시키셨으니까 그런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셔서 그런 거 물어보셨지만 요즘은 배달의 민족이나 쿠팡 잇츠나 너무 잘 돼 있으니까요. 근데 저는 그런 앱들이 좋다고는 생각해요. 왜냐면 가끔 전화로 주문하셔서 “픽업할게요.” 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그런 분들은 저희 메뉴가 뭐가 있는지 세세하게 다 모르시거든요. 근데 쿠팡 잇츠나 배달에 민족 들어가면 메뉴가 간략하게 잘 돼 있고 이걸 선택했을 때 추가 메뉴가 뭐가 있고 옵션이 뭐가 있고. 그걸 다 따질 수가 있잖아요. 전화하시는 분들도 배달 앱을 보면서 주문하시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니까 저한테 메뉴를 물어보셔서 주문을 하시는 것보다 배달 앱을 보시면서 통화하시면 더 편하시겠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런 것도 어딘가에 전화기나 그런 걸 녹여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맞아요. 저도 그 생각 한 적 있어요. 이제 플랫폼이 있다는 건 사람들이 아는데 그게 익숙하지 않아서 전화를 하면 그 사이를 연결해 주는 ARS 회사가 나오면 좋겠다. 너무 사소한데 고령 계층에게는 가르쳐드린다는 건 사실 거의 불가능해요. 너무 사소한데 그런 디테일한 부분은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맞아요.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맞아요. 정말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그리고 또 배달앱은 너무 수수료가 비싸요 네 제가 그래서 원래 1월에 오픈하고서는 처음에 배달을 안 했어요. 왜냐하면 열심히 일하고 음식 만들고 손님한테 제공하는 건 전데 거기서 돈을 받는 거니까 너무 불합리하다고 느껴지더라고요. 처음에는 물론 배달의 민족이나 쿠팡에서는 그 앱을 만들기 위해서 수억이 들어가서 개발했겠지만 솔직히 저는 개별적으로 각가의 사장님들한테 돈을 가져가는 게 굉장히 클 거 아니에요. 그래서 처음에 배달을 안 했어요. 안 하다가 손님들이 배달을 해달라고 하시니까 … 그리고 또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홀이나 포장 매출이 줄어들기 시작해서 배달을 시작하긴 했거든요. 근데 너무 수수료가 비싸요

여전히 비싼가 봐요.

네. 너무 비싸요.

코로나가 사라지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는 이 가게를 하면서 느낀 건데 저희 가게를 찾아오시는 손님들이 굉장히 분위기가 다 좋아요. 오셔서 맛있다 하시면서 칭찬도 해주시고 화이팅도 많이 해주시고 가시는데 그런 분들을 만나면서 저도 되게 힘을 얻고 있거든요. 근데 코로나 때문에 저희 가게가 너무 좁다 보니까 좁은 거 보시고 손님이 좀 있다 싶으면 그냥 가시거든요. 그래서 코로나가 없어진다면 홀을 더 넓혀서 크게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는데 그러기에는 지금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위험을 감수할 수도 없고…  코로나가 없어진다면 손님들도 더 많이 오실 거라는 생각에 홀을 더 넓혀서 여러분들이랑 좀 호흡을 많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사장님께 가게가 무대 같아요. 너무 멋있으신 것 같아요. 지금 무대에서 뭔가 주인공을 주인공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네. 선장이죠. 선장.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저는 원래 반찬 가게를 하고 싶었어요. 제가 영양사 출신이다 보니까 메뉴를 만들고 메뉴를 개발하고 새로운 메뉴를 도전하는 걸 되게 좋아해요. 그래서 반찬 가게를 하나 열어서 요즘에 핫한 메뉴 해서 코너도 만들어보고 밀키트로 간단하게 집에서 해보세요, 이런 것도 만들어보고 주간 메뉴를 이렇게 해서 반찬 가게도 해보고. 이런 식으로 많이 해보고 싶거든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요리를 너무 좋아해서 집에서 이런 반찬도 새로 해 먹어보고 언니랑 저것도 다시 해보자, 이런 식으로 해서 많이 만들어 먹어서 ‘나는 꼭 요리에 관련된 학교를 가야지’ 라고 생각해서 대학교도 영양학과를 갔거든요. 너무 재밌어요. 돈보다 제가 하는 일이 즐거우면 되거든요. 너무 재밌어요. 저는 지금. 코로나만 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근데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