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ideas streamlined into a single flow of creativity. Smiltė.

# 20대 # 큐레이터 # 성내천이 출퇴근길

채소라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신림동에서 태어났고 3세부터 7세까지는 미국에 잠깐 갔다가 다시 한국에 왔습니다. 미국에 있을 때는 LA 근처의 빅 베어 시티라는 지명이 있는 곳에서 지냈습니다.

지금 사는 곳에 어떻게 오게 되었나요?
아버지가 대전의 교수로 임명되셔서, 초등학교 3학년까지 대전에서 살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서울에 올라왔어요. 성내동에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살았습니다.

과거에 살았던 장소에 관한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가 있나요?
미국에서 15살 때, 그림을 그렸었는데요. 미국에서 그림 하나로 구청에 그림이 걸리고, 동네 신문에도 실린 적이 있어요. 낯선 환경 가운데서 그림이라는 제 창작물 하나가 저라는 사람을 인식하게 도와주는구나 생각했어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줄 수 있겠다고 깨닫는 좋은 경험이었어요. 그 경험이 저로 하여금 계속 그림을 그리게 했던 것 같아요. 그때 부모님이 제가 그림을 그리겠구나 생각하셨대요. 대전에도 인상 깊었던 기억이 많아요. 주말 농장에서 직접 고구마를 키우고 판매한 경험이 있어서,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데 소질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고구마 수확량이 꽤 됐었어요. 부모님이 남는 게 많으니 좀 팔아 볼까? 해서 저희 쌍둥이에게 시장에서 팔아 보라 하셨어요. 초등학교 2학년인데도 시장에 고구마를 들고 나갔어요. 때마침 학교 같은 반 남자애가 부모님과 시장에 온 거예요. 그래서 그때 그 부모님이 다 사셨어요. 그런 쏠쏠한 추억이 있어요.

서울은 어떻게 오게 되었나요?
아버지 직업지의 이동을 따라서 중학교 때 서울 관악구로 올라왔어요. 그러다가 아버지가 일로 미국에 잠깐 또 가시게 되셨어요. 저는 당시 중학교 졸업을 1년 남겨놨지만 미국에도 가 보고 싶어서 갔어요.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한국에서도 관악구에서 중학교 3학년부터 다시 다녔고요. 그래서 또래보다 한 살이 많습니다. 그 이후에도 이동을 계속 했어요. 영등포 대림에서 살다가, 당시 어머니의 병환 때문에 병원 접근성도 중요했고, 자주 다니시는 교회의 장소, 출근 거리 등으로 아버지가 강동구 쪽으로 이주를 결심하셨어요. 저희 집이 어릴 때부터 다니는 교회가 현재의 강동구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이쪽에 오는 방향으로 정해지게 된 것 같아요. 여기 살게 된 건 처음이지만, 여기서 교회를 오래 다녀서 낯설지는 않았어요.

미국에서의 경험은 어떠했나요?
미국에서도 느낀 것이 많습니다. 제가 유년 때 알던 미국 반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기도 하고, 처음 만났을 때는 친구가 어린이었는데, 다시 만나니 미국 하이틴 드라마 주인공처럼 멋있게 지내고 있기도 하고요. 처음에는 미국 생활이 낯설고, 두렵기도 해서 제가 조금 소극적이었어요. 다니는 학교에 유독 아시안이 없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또 외국인 전용 교실이 있어서, 그 클래스를 다니며 몇 개월 뒤에는 말하기가 늘어 자신감이 좀 생겼어요. 미국 문화권에서 나이에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많이 배웠고, 나름 그때는 문화 충격이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한 살 더 많이 먹고 학교 다녔을 때도 그런 미국에서의 경험이 위로가 되기도 했고요. 저는 딱 미국에서 1년만 살고 돌아가기로 되어 있으니 뭔가 활동에 제한이 많았어요. 취미 활동이나 보습 학원 같은 것도 다니기 어려웠고 아쉬웠어요. 미국에 이런 문화가 있구나, 할 때쯤 한국에 돌아와야 했어요. 그래도 한국의 삶에 비해서 시간적 여유가 좀 많았어요. 그래서 스노우보드 같은 것을 배우고 놀았어요. 제가 한국에서는 주로 아파트에 살았는데, 미국 집은 1층 거실에 벽난로도 있고, 복층도 있고, 산간 지대 주변의 별장처럼 그런 느낌이 나는 집이었어요.

현재 장소가 그간의 이동지에 비해서 다른 점이 있나요?
저는 새로운 사람을 낯설어하지 않고 적응을 잘하는 편이라 이동하면서 어렵게 느끼는 것들은 별로 없는데, 집의 형태적 모양이 달라진 것 정도가 좀 다르네요. 독립을 하는 이 시점에서는 제 집에서 살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달라진 것 같아요.

지금 시점에서 예전의 공간들을 떠올리면 아쉬운 것이 있나요?
최근까지도 미국의 정원 딸린 주택, 마당이 있는 형태가 그리웠어요. 미국은 문화 특성상 어떻게든 집 안에서 놀 수 있고 취미를 할 수 있는 걸 만들잖아요. 한국은 공간적 문제로 집 안에서 자신의 소소한 행복을 작게 찾는 게 유행이지만요. 언젠가 적당한 만큼만 자연과 밀접한 지역에서, 제 정원이 있으면서 제가 충분한 작업할 수 있는 공간과, 채광이 풍족한 집에서 있고 싶어요. 또 너무 멀리 이주하고 싶지는 않아요. 서울에서 쌓은 학창시절과 친구들과의 관계가 있는데, 너무 먼 곳으로 이주하게 되면 그런 관계들이 아쉬워지니까, 이 지역 근처에 있고 싶어요.

당신에게 공간 또는 집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저에게는 공간이나 장소가 가지는 의미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사람과의 관계가 조금 더 중요해요. 공간이나 장소는 제게 추억으로 남는 것 같아요. 저는 기회가 있다고 하면, 언제든지 떠나고 해외로 나가고 싶어요. 그런데 좋아했던 사람이나 관계들이 저와 멀리 떨어져 있다면 힘들 것 같아요. 제게 집이란 모든 감정들을 엮어서 기억에 남게 해주는 매개체인 것 같아요. 자연 기후도 달라지니까, 자연과의 관계도 달라지고요. 바람도 냄새도 동물도 식물도 너무 다르잖아요. 관계를 엮어 나가는 근거가 장소와 지역이 된다는 게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또 집은 제가 그동안 이뤄왔던 것들, 성취가 녹아 들어간 공간이에요. 저는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더라고요. 제가 일한 각각의 포트폴리오와 준비하고 있는 각각의 일들 그런 것들이 없어진다면 너무 슬플 것 같은데, 집이 그걸 저장하는 장소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또 그걸 기반으로 다음 꿈을 꿀 수 있게 해주는 나의 영역, 나만의 아지트기도 하고요.

가장 살고 싶은 집 또는 지역은 어떤 형태일까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과 안정적으로 느낄 수 있는 요소가 있는 집에서 주변 이웃들과 나누면서 내 것을 즐길 수 있는 그런 장소면 바랄 게 없어요.

3년 후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3년 후에 이루고자 하는 일이 있나요?
제가 만든 그림책을 꼭 한 권 이상 내고 싶어요. 그 책을 통해서 많은 어린이들과 어른들을 감동시키고 싶어요. 또 그때쯤 사랑하는 사람과 미래를 꿈꿀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 사람과 안정적으로 공간을 준비해 나갈 수 있는 나 자신이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