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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대 # 자영업자 # 궁동 거주

김혜진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저는 지금 마포구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 김혜진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40대고 하는 일은 속눈썹 디자이너입니다.

지금 어디에 살고 있나요?
서울이긴 한데 굉장히 조그마한 동네인 구로구 궁동에 15년째 살고 있어요. 궁동을 잘 모르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구로구로 들어가는데 위치상으론 양천구 목동에서 좀 더 가까워요.

지금 사는 곳에 어떻게 오시게 됐나요?
저는 경상북도 포항에서 태어났어요. 저를 낳고 6개월이 됐을 때 아빠의 일터가 옮겨지면서 강원도 태백에서 살게 됐어요. 태백이 당시에 광산, 탄광 황금기였기 때문에 그쪽으로 이주를 결정하셨죠. 이후에 탄광이 다시 침체기를 맞이하면서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 마포구 연남동으로 올라오게 됐어요. 지금은 연남동이 굉장히 많이 발전하고 유명한 핫플레이스가 됐지만 그때만 해도 조용한 주택가 동네였거든요. 그리고 화교들이 많이 살아서 그들이 운영하는 중국집도 굉장히 많았어요. 그래서 지금도 그쪽이 만두나 중국집 유명한 곳이 많을 거예요. 그리고 2006년에 부모님이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자 경기도 일산으로 가게 됐고, 제가 2006년도 말에 결혼을 하게 되면서 지금 살고 있는 구로 궁동에 신혼집을 구하게 됐어요.

인생에 큰 계기가 됐던 이주는 어떤 곳이었나요?
강원도 태백이라는 작은 지방 도시에 살다가 초등학교 6년 때 서울로 이사를 온 게 굉장히 큰 충격이었어요. 너무나 다른 환경? 물론 태백이 논과 밭만 있는 곳은 아니고 당시에 아파트에서 살긴 했지만, 서울은 일단 사람이 굉장히 많은 거예요. 가장 놀랐던 것은 학교 친구들의 옷차림이나 말투가 너무 다른 거였어요. 태백에서 저는 흰색 타이즈를 신고 다녔는데, 서울 친구들은 어른들이 신는 스타킹을 신고 있고, 항상 걸어서 다니던 학교를 서울에선 버스로 통학한다는 것도 충격이었죠. 그리고 강원도는 이웃 간의 소통이나 교류가 많았는데 서울에선 주변 이웃들과 크게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사춘기에 들어설 때 이사를 오다 보니까 너무 싫어서 엄마한테 많이 떼를 쓰고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처음엔 적응하기 조금 힘들었어요.

살아온 장소 중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나요?
어릴 때 강원도 태백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삼척 바다라든지 낙동강의 물줄기가 시작되는 소도 당골에 부모님과 주말에 자주 놀러 갔던 기억이 많아요. 당시에 집에 차가 없어서 배낭에 텐트를 짊어지고 버스를 타고 캠핑을 갔죠. 제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곳이기 때문에 그곳에 대한 추억이 굉장히 많아요. 바다가 가까워서 항상 신선한 회나 홍게 같은 먹을거리들을 많이 먹었어요. 그리고 당시에 친가 쪽 친척들이 강원도로 이주를 많이 해서 자주 모이기도 하고, 집 앞에 바로 있는 강, 내천에서 친구들이랑 소꿉놀이도 하고 놀았어요. 제가 정서적으로 많이 성장하고 또 편안했던, 좋은 유년시절의 기억이 있는 곳이 강원도예요. 최근에 부모님을 모시고 태백에 간 적이 있는데 살던 집은 그대로 있었지만 주변이 굉장히 많이 변했더라고요. 제가 살 때만 해도 갑자기 인구가 확 늘었는데 탄광이 침체기를 맞이하면서 인구가 줄게 되었죠. 갔더니 사람이나 차도 별로 없더라고요. 옛날엔 반짝거렸던 우리 집이 너무 낡아 있더라고요. 정말 컸던 초등학교나 넓어 보였던 강도 이제 가서 보니 정말 작게 느껴지고요. 옛날 기억과 달라져 있는 모습이 좀 아쉽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방문하니 기분이 좋았어요. 제가 마포구 연남동에서는 12살부터 28살까지 초, 중, 고, 대학교, 회사생활까지 하면서 살았어요. 연남동 집은 위층에 살았던 아주머니께서 맞벌이인 부모님 대신에 저를 많이 아껴주셨던 기억, 당시에 함께 살았던 강아지에 대한 추억의 장소기도 해요. 현재의 연남동은 거리 자체가 많이 번잡해져서 옛날의 그 느낌이 없다고나 할까? 아쉬운 점은 있지만 반대로 많이 발전된 만큼 집값이 올라 그곳에 사시는 분들은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현재 살고 있는 궁동은 부동산을 돌며 신혼집을 알아보던 중 어떤 분의 추천으로 처음 알게 된 곳이에요. 서울에 저런 데가 있나? 싶을 정도로 작은 동네였어요. 가장 좋았던 게 신축 아파트를 분양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집 바로 뒤에 낮은 산이 있는데 5월이면 그 산에 아카시아가 피어나요. 집에 갈 때 궁동 터널을 지나 차의 창문을 내리면 아카시아 향을 확 느낄 수 있을 정도예요. 공기도 서울 같지 않게 굉장히 맑고 정말 좋아요. 작은 동네라 사람들이 많지 않고, 어떤 이유에선지 고도 제한이 있어서 아파트도 5층이에요. 그래선지 빡빡하지 않고, 일상을 힘들게 보내고 집에 가면 자연에 가는 것 같아요. 주변 환경이 정말 맘에 들어요. 그래서 현재 신혼집에서 15년째 살고 있어요. 너무 좋아요.

자신에게 공간과 장소의 이동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어릴 때 이동이라고 하면 제가 주관적으로 판단해서 갈 수 있는 게 아니고 어른들의 선택에 의해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잖아요. 굉장히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낀 적도 있어요. 특히나 강원도에서 서울로 이사를 와야 했을 때 친구들이나 내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잃는다는 생각 때문에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거든요. 우리가 무작정 산다고 살아지는 게 아니란 걸 굉장히 어릴 때 느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어른이 되어 보니 ‘이사 가면 그만이지’가 아니더라고요. 모든 삶의 터전 자체를 바꾸는 일이라서 굉장히 많은 고민과 경제적인 문제를 생각해야 하는 ‘쉽지 않은 일’이죠. 이사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 어려운 일이 되더라고요. ‘어깨의 무게’가 떠올라요. 삶의 무게와 경제적인 부담감을 요즘 정말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요.

부동산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고 들었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신혼집이 처음으로 성인이 돼서 제 이름으로 부동산을 접하게 된 계약이지만, 집 말고 처음으로 계약을 한 건 땅이었어요. 땅은 그냥 두면 돈이 된다는 추상적인 생각으로 잘 모르고 강원도에 쓸데없는 땅을 사게 된 거예요. 개발 호재가 있다고 했지만 제대로 실사도 나가지 않고 주변에서 오를 거라는 말만 듣고 단순하게 샀어요. 아직까지 오르거나 개발된 건 없어요. 그래서 그때의 문제를 개선해 보고자 내가 이것을 좀 더 알고 접근하면 실패하지 않고 도움이 되겠구나 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지금은 2, 3년 정도에 집값이 많이 올라서 회의적이긴 한데, 예전에는 내가 어느 정도의 시드머니를 가지고 경매나 부동산을 하게 되면 내 재산을 증식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시작했거든요. 부동산을 아예 모르다 보니 기초 강의 들으면서 용어들에 익숙해졌어요. 그리고 부동산을 돌아다니는 임장이란 걸 나가거든요. 임장을 다니면서 주변 시세가 어떤지, 매매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때 좌절을 맛본 게 아파트값이 이 정도로 많이 올랐구나, 하는 걸 뼈저리게 느꼈죠. 지금은 그때보다 배로 더 올랐죠. 신촌에 있는 아파트 20평짜리가 15억, 18억 이러니까. 정말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얘기죠. 집값이 너무 많이 뛰고 있긴 해요. 향후 이사 가는 것을 고려하니 더 관심 있게 보게 되요. 그런 점에서 어른이 됐다는 걸 조금 느끼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부동산에 관심을 두고 계속 공부하고 싶어요. 많은 분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도전하는 것보다 강의라도 조금 듣고 공부해서 후회 없는 투자를 하셨으면 좋겠어요.

현재 집에 대한 고민이나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계획이 있나요?
제가 입주할 때는 새 아파트였는데 15년 동안 살아오다 보니 결로도 생기고 조금씩 노후화 되는 게 눈에 보여요. 그리고 15년 전 트렌드의 인테리어, 마감재, 샷시, 아트월… 이런 것들을 어떻게 최저의 비용으로 조금씩 바꿔 나갈 수 있는지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 일단 단열재를 좀 더 보충해서 결로, 곰팡이가 생기지 않게 도배를 했어요. 조금씩 실천해 나가는 단계입니다.

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주방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취미가 몇 개 없는데 그중 하나가 요리거든요. 저나 남편이 바깥일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집에서 밥을 먹을 기회가 많지 않거든요. 그래서 집에서 함께하는 한 끼의 소중함이 굉장히 커요. 평소에 인테리어 사이트나 모델하우스를 보러 가는 게 취미인데 들어가면 바로 주방부터 봐요. 얼마나 수납이 잘 되는지, 동선은 어떤지, 싱크대, 개수대는 어떤 제품인지 중요하게 보는 편이에요.

자신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쉼이죠. 휴식과 힐링의 공간이에요. 밖에 나와서 지쳐 있던 내 몸과 정신을 쉴 수 있게 해 주는…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오늘 있었던 일들을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곳이에요. 저는 ‘집’이라고 하면 일단 기분이 좋고 남편이 가장 많이 떠올라요. 집이 주는 아늑함, 안정감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할 수 있는 안식처. 남편과 ‘우리가 이 나이 먹도록 뭘 이뤘지?’라는 생각을 할 때 ‘여보, 우리가 이렇게 발 뻗고 누워서 잘 수 있고 같이 맛있는 거 먹고 대화할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를 이룬 거야.’라고 얘기해요. 제가 정신적으로 앞으로 열심히 일을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공간이에요.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도 되는 ‘쉼표’가 그려지는 공간이에요.

3년 뒤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이루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너 지금 정말 잘하고 있어. 잘 살고 있어. 열심히 하고 있어. 넌 대단한 사람이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어떤 일의 성과가 나기 전이라도 열심히 하고 있을 때 비로소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열정이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3년 후의 저도 토닥여서 자존감을 높여 주고 싶어요. 열심히 살아와줘서 고맙고 아직 젊으니까 조금만 더 힘내자! 그리고 3년 후에는 집값이 안정이 돼서 제가 원하는 곳으로 이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걸스레쉬도 3년 후에도 같은 자리에서 조금 더 성장하고 발전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처럼 발랄하고 건강한 모습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정말 운이 좋다면 로또도 한 번 됐으면 좋겠네요. 주변 사람들 모두 건강하고 그땐 코로나도 없어졌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