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논현동 #나무 향기와 웃음 #사랑하는 사람 #방사시
지금 어디에 살고 있나요?
인천 논현동에 살고 있습니다.
그 장소에 어떻게 왔나요?
불교신자로서 어머니와의 갈등으로 힘들었습니다. 성인이 되면 독립을 해야 한다는 스님의 말씀에 따라 막연하게 독립을 생각하던 중 국민임대주택 신청을 통하여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월미도에 있는 반지하 주택에서 살다가 성인이 되면서 3층 주택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언니가 시집을 가게 되면서 다시 근처 반지하 주택에 살면서 많은 불편함과 고생 속에서 지내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유로 이동했나요?
언니가 시집을 가고 ‘나는 어머니와 함께 평생을 살아야 하는구나’라는 혼자만의 족쇄를 차고 있었습니다. 언니의 결혼으로 3층짜리 다세대주택에서 반지하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심리적으로 홀로 남겨졌다, 라는 생각과 어머니와의 갈등 속에서 그래도 부모님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얽매여 있었습니다. 반지하라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고 좁은 화장실이라 씻기도 열악했습니다. 어서 자리를 잡아서 빛도 들어오지 않은 곳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 당시 많은 충격으로 심리적으로 불안해 매일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쓰고 밤이 되어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모두가 잠든 밤이면 나도 잠들어도 된다는 안정감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법당에서 마음의 이야기를 나무면서 법문에서 다 큰 성인은 스스로 독립해야 한다는 말씀과 함께 주변의 권유로 국민임대주택에 신청하게 되었고, 몇 차례 실패 끝에 드디어 당첨이 되어 처음으로 독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독립을 했을 때는 자유에 대한 기쁨보다는 아무도 없다는 생각과 엄마를 불편한 반지하에 두고 왔다는 죄책감 때문에 울면서 일어나곤 했습니다. 엄마의 목소리가 녹음된 것을 밤에 켜 놓고 잤을 정도로 심리적으로 불안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천천히 적응을 하면서 마음도 몸도 회복되어 갔습니다.
지금까지 살았던 장소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은 뭔가요?
즐거웠던 공간은 첫사랑과 함께 운영했던 목공방이었습니다. 그곳에는 나무 향기와 웃음,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장소의 이동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추억을 만들수 있는 관문 같은 것입니다. 현재를 정성스럽게 채울 수 있는 기억으로, 시간이 지나면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자유와 사랑이 발자국이라고 할까요.
집이란 무엇일까요?
저에게 집은 안정감을 주는 울타리이자 소중한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방사시: 필요할 때 자리를 내어주는 보시) 공간입니다.
가장 살고 싶은 집은 어디인가요?
가장 살고 싶은 집은 마당이 있는 예쁜 전원주택입니다. 지역은 제주도입니다.
집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구애받지 않는 평화와 자유의 공간입니다.
현재 집에 대한 고민이 있나요?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계획이 있을까요?
현재는 2년마다 재계약을 해야 하는 월세 아파트에 살고 있기 때문에 비용도 나가고 내 집이 아니라 마음껏 꾸미기가 힘듭니다. 제 소유의 집이 있었으면 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면서 저축하고 있습니다.
3년 후에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3년 후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 : 한걸음 한걸음 잘해냈다. 너는 온전하고 소중하다. 3년후 이루고자 하는 일 : 안정된 직장과 결혼을 통해 다시 누군가를 정성스레 사랑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