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례 #별빛 쏟아지던 밤 #오늘이 최고 #고라니 고양이 고기
지금 어디에 살고 있나요?
위례에 살고 있어. 엄청 높은 데 사는데 우리 집에 가려면 매번 엘리베이터를 타야해. 탈 때마다 언니가 이걸 보고 집으로 가는 열차라고 해. 내가 무슨 애긴줄 알고. 타고 올라가면 우리 집은 공중에 떠 있어. 우리 집 뒷집은 캘리포니아야. 정말로 미국이야. 엄청 넓은 미군 땅인데 창문에서 다 보여. 하루에도 몇 번씩 고라니가 있나 없나 확인해. 나는 여기에도 매일 가. 매일 국경을 넘는 짜릿함이 있지.
그 장소에 어떻게 왔나요?
이건 나도 잘 몰라. 언니한테 물어봐야 해. 하남에 마당 집은 언니가 그러는데 원래 거기가 가족들 집이었던 적은 없대. 원래 언니랑 엄마 아빠랑 어릴 때부터 올림픽공원 근처에서 살았대. 하남은 엄마가 35년 동안 하던 식당이었는데 거기 주택을 새로 지어서 언니는 잠깐 들린 거였대. 그럼 뭐야 나는 원래 식당개였던 거냐고? 어? 정말이네! 나도 첨 알았어! 그리고 잠실 아파트가 원래 언니가 부모님 집에서 하산하고 계속 혼자 살던 집이었는데. 위례는 언니가 아파트 당첨되려고 온 건데 다 떨어졌대. 얼마 전에 강아지 친구랑 노는데 언니들끼리 하는 얘기를 들었어. 언니가 아파트 당첨 다 떨어지고 슬프다니까 친구네 언니가 울 언니를 정말 신기한 사람 다 본다는 듯이 묻더라고. 이렇게. “무주택자세요?” 무주택자세요? 그게 뭐야? 보라돌이세요? 뭐 이런 질문인 건가? 언니는 그 질문이 너무 재미있다며 이런 이상한 걸 만들고 있대. 세상은 넓고 영감은 많다나? 그리고 이사다닐 때마다 영향은 엄청 많지. 그래도 내가 영역동물인데. 옮길 때마다 다음 생을 사는 그런 기분이야. 그런데 난 다 괜찮아. 나는 영역동물이지만 한편으론 무리생활을 하거든. 그래서 언니랑 이렇게 둘이서 무리 짓는 건데 무리가 이동하면 이동하는 거지 뭐.
어떤 이유로 이동했나요?
너무 긴데? 들을 수 있겠어? 긴 말 주의 부탁해. 난 하남의 저수지 옆에 월남쌈집에서 태어났어. 마당에서 형제들이랑 뒹굴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나를 들고 차에 타더라고. 그리고 이웃집 마당에 내려졌어. 그게 바로 우리 집이었어. 그래서 마당에서 혼자 자고 있는데 한밤중에 어떤 사람이 나한테 걸어오더니. 다짜고자 왜 이렇게 못 생겼녜. 지가 더 못 생겼으면서. 그러더니 이제부터 자기가 언니래. 그날부터 그 못생긴 언니랑 같이 살았어. 그게 하남에 내 집이었어. 음, 그때가 참 좋았는데. 거기 우리 집은 앞집도 내 집 뒷집도 내 집 그 뒷집도 내 집이었어. 앞마당도 내 마당 뒷마당도 모두 다 내 거였거든. 나는 낮에는 뒷마당에서 놀다가 밤에는 언니랑 천 평짜리 앞마당을 질주하면서 놀았어. 아침에 눈 뜨면 마당에 고라니가 와서 내가 막 쫓아가고 동네에 내 친구들 똘똘이, 송이, 헬리, 행복이, 행운이도 있어서 매일 나 혼자 동네 순회도 다녀오고 아주 바쁘게 보냈어. 그러다 어느 날 언니가 잠실로 간대. 아빠가 나를 데려가지 말라고 해서 언니가 알겠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난 뭐 그런가보다 하면서 언니 잘 가라 하는데 언니가 이삿짐을 옮기자마자 다시 와서 나를 데리고 도망갔어. 처음 서울에 왔는데 깜짝 놀랐어. 차가 엄청나게 많고 공중에 엄청나게 큰 열차도 막 지나가고. 집은 갑자기 너무 작아져서 이게 케이지야 뭐야 했어. 그래서 내가 자주 놀이터로 탈출했는데 언니한테 금방 붙잡혔지. 그때 언니랑 매일매일 한강도 가고 올림픽공원도 가고 밤마다 자전거 타고 아파트 단지를 질주하고 그때 얻은 체력으로 난 피곤이라는 걸 모르지. 그러다 다음 일 년이 찾아왔어. 언니랑 다시 마당집으로 이사갔어. 그러다 그다음 해엔 위례에 아파트, 그러다 그다음 해엔 다시 마당 집. 아이고 지겨워. 이사 가더니 또 두 달 만에 위례에 아파트로 왔어. 들어도 뭔 소린지 모르겠지? 언니가 그러는데 이게 다 내 집 없는 설움이래. 내가 봤을 때 언니가 그냥 이사충이야.
지금까지 살았던 장소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은 뭔가요?
너무 많은데! 막 별빛 쏟아지는데 언니랑 둘이 미친 망아지처럼 뛰어놀던 밤이랑 5월에는 아카시아 냄새가 온 동네를 휘감았던 거, 아침에 산에 가서 언니랑 엄마랑 아빠랑 도라지랑 달래랑 두릅 캐와서 나 먹으라고 줬는데 내가 다 뱉어버린 거랑 가을에는 봄에 심은 걸 수확해서 곳간을 다 채웠어. 감자랑 고구마랑 쌀이랑 고추랑 토란이랑 옥수수 고추 말로 다 못 해. 창고를 가득 채우고도 남았어. 그땐 목줄이란 걸 본적도 없던 아련한 시절이었지. 소나기가 쏴 하고 내리면 현관문 활짝 열어놓고 산에 비 오는 거 구경하는 거랑 고라니 친구랑 고양이 친구랑 매일매일 만나는 거랑 눈 오면 젤 먼저 달려가서 친구들한테 눈 온다고 말해주던 거랑 밤마다 마당에서 고기 구어 먹던 거랑 아, 작년에 마당 집에서 마지막에 이사 나오는 날도 언니가 바빠 보여서 나 혼자 인사 다녀왔어. 똘똘이 행운이 송이 헬리 행복이 이렇게! 그날이 35년 동안 울 엄마가 했던 초원가든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대. 영원히 거기서 사는 줄 알았는데 아빠가 당근마켓에서 팔아버렸대. 뭐 상관없어. 하여튼 내가 그날 동네 사람들 모두에게 인사도 해주고 왔어! 샤샤 이제 가요! 모두 잘 지내세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그러고 보니 좋은 기억은 다 마당이네? 아파트? 여긴 뭐 별거 없어. 넷플릭스나 보고 스타필드나 가는 거지. 아차, 아차, 나 여기서 새로 취미도 생겼어. 뭐냐면 편의점 투어. 편의점에 가면 사장님이 맨날 간식 주시거든? 그래서 집에서 나오자마자 편의점으로 뛰어가. 세상은 넓고 간식은 많다! 그리고 새로운 동네에서 새 친구 사귀는 재미도 쏠쏠해. 언니가 자꾸 내년에는 제주도 간다는데 그 내년은 아주 안 오는 거 같아.
장소의 이동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의미? 난 그런 거 별로 생각 안 해. 그냥 오늘만큼 내일도 행복하면 좋겠다. 맛있는 거 많았으면 좋겠다. 그런 걸 생각해. 이게 주입식 교육의 폐해인데 언니가 맨날 나보고 그래. 나랑 사는 하루하루가 젤로 소중하다고. 난 그런 것도 잘 생각 안 해. 그거 말고 고라니, 고양이, 고기, 이게 내가 젤 좋아하는 기역 삼 종 세트야. 사람들 생각 많은 거 보기만 해도 머리 아파. 오늘이 나한테는 최고거든. 울 언니랑 나랑 맛있는 거 많이 먹고 고라니 만나서 뛰어놀고. 그게 단데?
집이란 무엇일까요?
서식지 이동!
가장 살고 싶은 집은 어디인가요?
나는 지금 여기, 여기가 좋아. 그리고 어디를 가도 언니랑 같이 있는 그곳이 좋아. 언니는 제주도래. 안 살아 본 데니까 살아보고 싶대. 인간은 멍청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집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음, 글쎄, 고양이? 언니는? 언니는 안전이래. 위례로 이사 올 때도 테라스 넓은 집에도 갈 수 있었는데 도둑 들까봐 무서워서 이렇게 높은 집에 온 거래. 울 언니가 겁이 좀 많거든. 근데 나도 초겁쟁이라 이해는 해. 자꾸 나보고 집 지키냐고 묻는데 집은요, 도어락이랑 세콤이 지키거든요?!
현재 집에 대한 고민이 있나요?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계획이 있을까요?
고민? 난 고민 같은 거 해본 적 없는데? 고민은 그냥 그럴 때 하는 거 아닌가? 고라니가 좋아, 고양이가 좋아? 언니는 맨날 자기 전에 역세권 단독주택을 검색해. 매일 보는데 마음에 드는 집이 하나도 없대. 내 생각엔 집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없는 건데! 해결하기 위한 계획? 글쎄? 그거 몰라? 문과생은 유튜브밖에 답이 없다!
3년 후에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언니랑 나랑 가족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300년 더 같이 살기를!